[food&] 3분의 기다림, 하루의 행복 ‘핸드드립 커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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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3분 vs 30초’

핸드드립을 할 때 생기는 작은 거품은 신선한 커피를 상징한다. 커피는 신선해야 맛있다.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이다. 에스프레소(30초) 6잔을 뽑을 수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다. 물을 끓이고, 커피 원두를 기계로 갈고, 커피 가루 위에 주전자로 물을 붓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붓는 것을 반복하며 천천히 내려야 한다. 일단 시간과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뽑아 종이컵에 들고 다니며 먹는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에 밀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데 요즘 드립커피에 대한 담론이 솔솔 나온다. TV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이후 드립커피에 대한 인기가 다시 살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커피계’의 아날로그인 핸드드립을 고집하는 동네 커피집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손님과 마주앉아 인생 얘기를 하는 재미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하는 드립커피 전문점 주인장도 있다. 여전히 핸드드립으로 먹고사는 커피집에서 ‘그들이 사는 법’을 들어봤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자신만의 색 담을 수 있는 정물화 같아

서울 연남동의 주택가에 은은한 커피향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 ‘도깨비 커피집’이 있다. 위치부터 커피집이 있을 만한 곳으론 보이지 않는 도깨비 같은 집이다. 이곳엔 4개의 테이블과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주인장 김철곤(37·사진)씨가 있다. 오가는 동네 주민이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하고 가는 걸 보니 이 커피집, 동네 사랑방이 틀림없다.

‘1999년 도깨비 같은 커피가 도깨비 같은 인생에 들어왔다. 2008년 6월 내 인생에 도깨비 커피집이 생겼다.’

도깨비 커피집 메뉴판의 첫 페이지에 적힌 글귀다. 10여 년 전 대기업에 다니던 주인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우연히 작은 커피 가게에 취직했다. 그 후 그의 인생에 도깨비처럼 커피가 자리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 커피집 이름이 도깨비집이란다. 처음에 커피는 마냥 썼다. 3년 정도 지나자 설탕을 타지 않아도 커피가 달게 느껴졌다. 커피 원두마다 다른 맛과 향도 느껴졌다. 그제야 커피에 대해 말하게 됐다. 커피를 알고 난 뒤엔 핸드드립 커피를 고집한다. 아이스커피부터 카페라떼까지 모든 커피를 손으로 직접 내려 만든다.

“드립커피는 마치 정물화와 같아서 손으로 그려나가는 동안 나만의 색을 담을 수 있어 좋아요.”

그는 “우리나라의 채식 문화에는 느끼한 음식에 어울리는 에스프레소보다는 핸드드립 커피가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커피 블렌드에도 자신감을 표한다. 그래서 가장 자신 있게 권하는 메뉴도 ‘브랜드 커피’다. 콜롬비아·브라질·과테말라·모카 등 4가지 원두를 섞어 만들었는데 입안에 감기는 향과 맛이 풍부하면서 균형이 잡혔다고 자랑한다. 3000원. 서울 연남동 561-3, 011-893-4878.

맛 다양하게 내고 내려받는 동안 마음 담고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정문 맞은편 좁은 골목길 안에는 밖에선 잘 보이지 않는 ‘동우네 커피집’이 있다. 이곳에서만 벌써 10년째다. 이동우(47·사진)씨가 주인이다. 이씨는 매일 커피를 직접 볶는다. 볶은 후 2~3일 지난 커피가 제일 맛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는 연하고 부드럽다. 한 잔을 시켜도 두 잔 분량이 나온다. 수다를 떨면서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시라는 배려라고 했다. 이 집에 핸드드립만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는 늘 핸드드립을 권한다.

“단골들은 핸드드립이 아닌 다른 커피를 시킬 때 내 눈치를 볼 정도예요.”

그는 핸드드립을 만드는 동안 마음을 듬뿍 담을 수 있고 담백하고 맛도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이곳은 또 학생들 사이에선 ‘멘토커피숍’으로 유명하다. 취재를 하러 간 날도 주인장 이동우씨는 한 여대생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얼핏 들리는 얘기론 ‘연애 상담’이었다. 10년째 성대생들의 아지트가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멘토가 됐다고 했다. 어느 교수가 시험 문제를 어떻게 낸다든지, 어느 기업의 입사 원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을 훤히 꿰고 있다. “여기 오는 애들한테 10년째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담 전문가가 됐다”며 웃었다.

테이블이 3개뿐인 작은 가게 곳곳에 만화책부터 크리스마스 초·인형 등의 장식물이 빼곡하다. 조금 산만할 정도다. 그는 “애들이 가져다 놓고 자기 것이 있나 없나 늘 확인해서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곤 “나는 내놓는 게 커피뿐인데 애들이 나한테 오히려 많은 것을 줘서 행복하다”고 웃었다. 서울 명륜2가 114-1, 02-765-3358.

같은 원두라도 ‘물 조절’ 따라 맛 천차만별

핸드드립 커피와 에스프레소의 맛은 커피를 추출할 때의 ‘압력 차이’로 달라진다. 핸드드립의 경우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 주전자로 물을 부어 커피를 뽑다 보니 커피의 수용성 성분만 추출된다. 그래서 맛이 깔끔하고 부드럽다. 에스프레소는 기계에서 9기압의 힘을 가해 커피를 추출해 수용성 성분뿐 아니라 당분·단백질과 같은 비수용성 성분도 같이 나온다. 맛이 탁하나 강렬하다.

핸드드립 커피는 ‘손맛커피’다. 물줄기의 굵기, 물의 양과 온도, 물을 붓는 시간 등 커피 맛은 수많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핸드드립 커피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면서 가장 맛없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드립커피 전문점 가배두림의 이동진 대표는 “핸드드립 커피는 같은 커피 원두를 사용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맛이 달라져 매 순간 ‘단 하나뿐인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커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원두’다. 원두는 습도·온도·산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갓 볶은 커피는 맛이 억세고 강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피는 부드럽고 은은해진다. 로스팅 후 20일 정도 지나면 커피 맛은 급격히 떨어진다. 도깨비 커피집의 김철곤 사장은 “집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갓 볶은 원두를 조금씩 사서 빨리 먹어버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커피를 보관할 때는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밀봉해서 보관한다. 커피를 냉장고에 보관할 경우 냉장고 냄새가 배고 커피를 꺼낼 때마다 습기가 차 오히려 커피 맛을 떨어뜨린다.

취향 따라 고르는 커피원두

●에티오피아 모카 ‘커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부드럽고 달콤하다.

‘향 커피’로 착각할 정도로 향이 강하다

●에티오피아 모카 예가체프 커피에서 은은한 군고구마 향이 난다. 단맛과 신맛이 조화롭다.

살짝 볶은 커피일수록 맛과 향이 살아 있다.

●탄자니아 AA 약간 거친 느낌으로 가장 ‘아프리카 커피’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커피를 마신 뒤 부드러운 흙 냄새가 여운으로 남는다. 균형 잡힌 맛으로 ‘커피의 신사’라 불리기도 한다.

●콜롬비아 슈프레모 단맛·신맛·쓴맛의 조화가 뛰어나다. 다른 커피와 섞었을 때 맛이 튀지 않는다.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다.

●케냐 AA 덜 익은 과일향이 나면서 알싸한 신맛이 있다. 맛이 오랫동안 입에서 남아 있다. 유럽에서 인기가 많다.

높이고 맛 올리는 핸드드립 커피 만들기

가장 간단한 핸드드립 커피 추출 방법으로 ‘종이드립’이 있다. 종이필터, 드리퍼, 드리퍼를 받치는 주전자인 서버, 주둥이가 좁은 주전자 등이 필요하다. 동네의 핸드드립 카페나 인터넷에서 기구를 살 수 있다. 1인분 커피에는 원두가루 15g과 물 200~250mL가 들어간다. 물은 팔팔 끓인 것을 핸드드립용 주전자에 옮겨 담으면 적당한 온도로 맞춰진다. 커피 잔에 따뜻한 물을 미리 부어 놔 데워놓으면 좋다.


①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놓고 갓 갈아낸 원두를 넣는다. 드리퍼를 살살 흔들어 윗면을 평평하게 한다.

② 원두의 가운데부터 시작해 원을 점점 크게 그리며 물을 붓는다. 이때 신선한 원두는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데 부풀어 오른 가장자리를 따라 원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평균적으로 주전자를 5바퀴 돌린다. 물줄기는 가늘면서 끊기지 않아야 한다.

③ 물이 종이필터에 닿기 전에 붓기를 멈춘다. 커피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면서 30초 동안 뜸을 들인다.

④ 물이 다 스며들어 원두에 금이 생기면 물을 다시 부으며 1차 추출을 한다. 가장자리 1㎝ 정도만 남도록 물이 차오를 때 붓기를 멈춘다. 물을 부을 때는 원두의 가운데에 물을 충분히 주면서 물이 직접 종이에 닿지 않도록 한다.

⑤ 물이 아래로 모두 빠지기 전에 다시 물을 부어 2차·3차 추출을 한다. 방법은 1차와 같다. 3차 추출까지 하면 한 잔(약 200mL) 분량의 커피가 만들어진다. 추출에 걸리는 시간은 총 3분이 적당하다. 단 약하게 볶아진 커피는 2차 추출만 하고 뜨거운 물을 부어 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가배두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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