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약국집’ 윤미라, 한번쯤 결혼했더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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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지난 7개월간 ‘솔약국집 아들들’의 드센 엄마로 살았던 윤미라. 곱게 차린 모습을 보고 마흔 된 아들을 둔 엄마하기엔 너무 젊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사실 그런 감이 있지?”라며 까르르 웃는다.

취재_박진영 기자 사진_문덕관(studio lamp) 장소 협조_wine bar half past ten(02-792-5416)

이승기가 ‘70%의 사나이’라면 윤미라는 ‘80%의 여인’이다. 올 상반기 (여러 이유로) 화제작이었던 ‘아내의 유혹’이 시청률 40%를 오르락내리락했고, 얼마 전 종영한 ‘솔약국집 아들들’ 역시 40%가 넘는 시청률 기록을 세웠으니, 출연작마다 흥행 대박.

‘솔약국집 아들들’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아직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매번 작품이 끝날 때마다 긴 후유증을 겪는 그녀지만 이번엔 그야말로 ‘착한’ 드라마로 모두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아쉬움이 더욱 컸을 터다.

“처음엔 솔약국집 엄마가 너무 억세고 욕도 잘해서 걱정했어요. 무슨 이런 엄마가 다 있나 싶었죠. 그런데 아들 넷에 남편과 시아버지까지 남자 많은 집 엄마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이해가 가더라고요. 아무튼 엄마가 무지 속을 끓일 수밖에 없는 집안이었죠(웃음). 사실 아들들 때리는 장면을 찍을 때는 너무 힘에 부치긴 했는데 오히려 그 장면이 속 시원했다는 엄마들이 많더라고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대가족을 일구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의미도 있고요.”

연기 경력 37년 차인 대배우의 연기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실례지만, 다소 진부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데는 똑같은 엄마 역할도 똑같지 않게 디테일한 감정 선까지 표현해 내는 그녀의 연기력이 한몫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공을 아들들에게 돌린다.

“우리 아들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했어요. 큰아들 손현주의 연기야 말할 것도 없고 둘째부터 신인인 막내까지 제 몫을 다했죠. 재밌는 게 드라마에서 제 아들 역할을 한 배우들은 이상하게 다들 성공하더라고요(웃음). ‘짝’에서 안재욱이 그랬고, 송일국도 오랫동안 무명이다가 ‘애정의 조건’에서 내 아들로 나온 후에 스타가 됐죠. ‘굳세어라 금순아’의 강지환도 그랬고. (손)현주야 워낙 스타니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아들들도 이번에 아마 다 잘 될거예요(웃음).”

사랑의 감정은 늘 갖고 살아요, 나는 배우니까

은근히 아들 자랑하고, 또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진짜 엄마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아직 싱글이다. 굳이 물리적인 나이를 따지자면 60을 목전에 둔 그녀. 영화와 드라마에선 별별 남편을 만나 원 없이 결혼 생활을 경험해 본 그녀지만 실제로는 운명적인 인연이 없었다.

“김용건씨, 임채무씨, 백일섭씨 등 웬만한 동료 남자 배우들하곤 다 부부로 살아봤으니 제가 남편이 좀 많죠(웃음). 이번에 제 남편이었던 백일섭씨하고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7년 동안 부부 연기를 했는데, 이젠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컨디션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다니까요. 이런 남편, 저런 남편과 다 살아봐서 제가 별로 결혼의 절실함을 못 느끼나 봐요(웃음).”

처음부터 결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배우로 살기 위해 철저히 사생활을 포기해야 했던 젊은 날에도 어찌 안타까움으로 남은 사랑의 폭풍 한두 번 겪어보지 않았을까. 그러나 정말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그녀가 30대 중반일 때까지는 딸의 결혼을 걱정했던 어머니도 그 후로는 ‘혼자 멋지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며 노선을 바꿨다. 외롭지 않으냐는 사람들의 질문엔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법이라고, 결혼한 사람들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며 우문현답을 내놓는 그녀지만, 요즘 들어 특히 친구처럼 함께할 딸 하나쯤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제가 2남 3녀 중 맏이라 동생들도 있고 조카들도 많아서 그다지 외로운 건 모르겠어요. 어머니랑 함께 살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죠. 또 솔직히 제 또래 연예인 동료들이 한두 번씩 이혼하는 걸 보면 나는 그런 아픔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그런 생각 자체가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일 수도 있죠. 실패로 끝났더라도 한번쯤 결혼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결국 운명이 아닌가 싶어요. 또 모르지, 이러다가 어느 날 제 짝을 만나게 될 수도 있겠죠. 사랑의 감정은 늘 갖고 살아요. 나는 배우니까.”

배우의 길로 들어선 것도 어쩌면 운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예쁜 외모로 주위에서 ‘미스코리아 한번 나가봐라’는 말을 숱하게 듣다 보니 진짜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는 지금과 달리 미스코리아가 배우를 겸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었으니, 미스코리아 대회보다 배우 선발대회에 먼저 나간 게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스럽다. 19세의 나이, 화려한 데뷔였다.

‘소녀시대’가 부럽지 않은 인기, 사생활 포기해야 했던 아, 청춘이여

“임권택, 신상옥 감독 등 전국에서 유명한 감독들이 배우를 뽑는다는 공고가 났어요.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응모했는데 덜컥 1등이 됐죠.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어요. 저희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가르치는 등 좀 깨어 있는 분이셨거든요. 인기요? 괜찮았죠(웃음). 제가 그 당시론 엄청나게 큰 키였는데, 얼굴이 동양적이라 그런지 역할에 크게 제약은 없었던 것 같아요.”

1972년 영화 ‘처녀뱃사공’ 주연으로 데뷔해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던 그녀의 인기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20대 초반 여배우의 전유물이었던 화장품 광고를 30대까지 했으니 말이 필요 없을 정도. 박스 한 가득 쌓이는 팬레터는 물론이고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성 팬도 한둘이 아니었다. 동료 남자 연예인 중에서도 대시하는 이가 왜 없었을까. 요즘 모든 남자의 로망인 ‘소녀시대’ 인기가 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스캔들 하나면 배우 인생이 끝나던 시절, 촬영장과 집을 오가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가 늘 따라다녔어요. 그땐 호텔 로비에만 가도 룸에서 나왔다고 기사가 나오던 시절이라 엄마가 더 엄격하게 했던 것 같아요. 요즘 배우들 보면 TV에 나와서 첫 키스며 스캔들까지 다 밝히니 얼마나 좋은 시대예요? 우리 때는 연애도 숨어 다니면서 했으니 뭐가 제대로 되겠어요. 유혹은 많이 받았는데 절절한 사랑의 기억이 없어요. 그런 사랑을 못해 본 게 후회가 되죠.”

청춘에 대한 아쉬움만 아니면 나이 들면서 느끼는 편안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데뷔 때부터 주연을 맡았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마음고생도 많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기의 굴곡으로 인해 상실감도 맛봤다.

“30대 중반부터 엄마 역할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조금 섭섭했죠. 그러더니 마흔이 되니까 자연스레 받아들여졌어요.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고 기다리는 직업이잖아요. 자기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힘들어요. 연륜이란 게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에요. 예전에 큰 상 받고 그랬을 때 난 그럴 만하다는 우월감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고 부끄럽죠.”

그녀는 인터뷰 내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핫한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해도 열정을 바쳐 연기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그녀. 촬영장에서 혼신을 쏟고 집에 돌아오면 와인 한 잔으로 허한 마음을 달래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늘 옆에 있는 어머니가 힘이 된다.

“엄마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엄마의 존재가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올해 79세이신데 뒷모습만 봐도 짠해지죠. 촬영이 없을 땐 엄마랑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해요. 엄마가 나한테는 가족이고 애인이에요. 엄마한테 말 못하는 고민과 외로움은 그냥 혼자 견디는 거죠. 그래서 술이 좋다니까(웃음).”

인터뷰 말미, 언젠가 신문 1면에 그녀의 결혼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으면 좋겠다는 농담이 오갈 무렵 그녀가 와인 한 잔을 권했다. 한 잔이 ‘몇 잔 더’로 이어지는 동안 인터뷰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분위기에 취하고, 진솔한 사람 이야기에 취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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