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국가 보안법 개폐' 극단 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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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9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동시에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형법을 보완하거나 독립된 특별법 형태의 대체입법을 제정하는 형태로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반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도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폐지 당론 확정= 열린우리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정책의총을 갖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키로 결정하고 당내에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국민여론과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정책의총 직후 브리핑을 통해 "우리당은 국보법의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성격을 고려해 이 법을 폐지키로 결정했다"면서 "다만 폐지로 인해 있을 수 있는 안보공백에 대한 불안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동시에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천 원내대표는 보완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형법 보완 또는 독립된 특별법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리당의 이같은 방침은 당내 소수의견인 국보법 개정론 대신 일단 실정법으로서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다수의견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이어서 일부 조항의 개정을 주장하는 야당과 치열한 개.폐 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당은 그러나 비조직적 고무.찬양 행위에 대한 처벌 등 국보법 폐지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안보 공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형법 보완과, 독립된 형태의 특별법 제정이라는 두가지 해법을 놓고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날 의총에서 우윤근 의원이 마련한 형법 보완안과 최재천 의원이 입안한 '파괴활동 금지법'이라는 명칭의 별도 입법안이 소개됐으나, 결론을 맺지는 못했다.

형법 보완안은 형법상 내란죄의 대상을 넓혀 테러집단과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단체로까지 포함시키고, 헌법의 국토조항에 따라 외국으로 분류되지 않는 북한을 규정하기 위해 형법상의 '준적국' 개념에 '국토를 참절할 목적으로 지휘통제를 갖춘 단체'를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파괴활동금지 입법안은 7개조 14개항으로 구성된 법안을 제정해 국보법상의 '반국가단체' 조항을 '헌법에 규정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구성된 국가에 준하는 단체'로 규정하고,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 간첩죄, 금품수수죄 등은 일부 변경하며, 잠입.탈출과 찬양.고무, 회합.통신, 불고지죄 등의 조항은 삭제했다.

천 원내대표는 "국회의 입법을 책임지는 당으로서 법원의 해석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국보법 폐지후 보완이 아니라, 국민의 안보불안 해소를 위해 폐지와 동시에 보완이 이뤄지도록 의견을 모았고, 개정을 주장한 의원들이 '폐지 및 동시 보완론'을 수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원내대표는 "대체입법이라는 용어는 과거 민주질서 수호법이나 국보법의 변형을 떠올리게 하기에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고 판단해 폐기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나, 보완책의 하나로 떠오른 별도 특별법 제정안은 사실상의 대체입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당은 일단 최용규 제1정조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팀을 중심으로 당내 의견을 모으고, 경찰, 검찰, 국정원, 기무사 등 관련 국가기관과 재향군인회, 성우회 등 보수단체 등과의 토론회 등을 거쳐 초안을 마련한 뒤 다시 의총을 열어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부영 의장은 이 자리에서 "냉전.분단체제에서 데탕트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국보법이란 걸림돌을 제거하고 청산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불행했던 과거유물인 국보법 청산에 대해 이론의 여지없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집권여당으로서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안심할수 있도록 챙겨가는게 책무"라면서 "북한과 옳지 않은 관계를 갖거나 국가안보를 해칠 정도로 위해를 가하는 부분 그리고 일부에서 선동적으로 지적하는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휘두른다'는 부분 등에 대해선 분명히 제재와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근혜한나라당대표가 9일 오전 염창동당사에서 가진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 보안법 폐지 발언 폐지 요구=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날 염창동당사에서 가진 특별기자회견에서 "국가보위와 체제수호의 최후 책임자인 대통령이 앞장서서 대한민국 체제의 무장해제를 강요하고 대한민국을 엄청난 이념갈등과 국론분열로 몰아넣고 있다"며 "만약 국민을 무시하고 끝까지 폐지를 강행하려 한다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신념과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인 국보법을 폐지하는 것은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한나라당은 국보법을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개정하겠다"며 "시대변화에 부응하고 악용의 소지가 있는 조항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이 충분히 납득하고 안심할 수 있도록 개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거 국보법 집행과정에서 일부 인권침해 사례가 있었다는 점은 유감이지만 그것을 이유로 국보법의 순기능마저 없앨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과거사 논란과 관련, 박 대표는 "한나라당은 이 문제에 당당하게 임할 것"이라며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배격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시대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라며 "이제 새롭게 규명할 것은 규명해 그늘진 역사까지도 햇빛 아래 비춰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 대한민국의 운명이 위험한 벼랑 끝에 놓여 있는 만큼 노 대통령부터 기본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며 "국보법 문제와 과거사 논란으로 더 이상 나라를 어지럽히지 말고 경제살리기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은 국보법 문제와 과거사 논란은 국민의 뜻을 제 1의 기준으로 삼아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고 경제살리기에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종합,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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