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바꾸는 사회 1] 정보복제 꼭 막아야 하나-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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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신문에는 벤처에 관한 기사가 수시로 오르내리고, 성공한 벤처사업가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의 영웅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장밋빛 분위기에 젖어 많은 사람들이 '묻지마 투자' 를 하고, 때문에 벤처사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돈버는 시대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무대의 저편에서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도둑맞았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벤처사업가도 심심찮게 본다.

그래서 벤처사업가 중에는 어떻게 하면 내 아이디어, 내 기술을 도둑맞지 않을까 고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 달리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이 내 아이디어, 내 기술을 훔쳐 쓴다고 한들 내가 그 기술.아이디어를 사용 못할 바도 아니다.

또한 내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전송해 줘도 그 파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정보의 공유란 어느 면에서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그러나 기술을 도둑맞았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벤처사업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수많은 시간.노력.비용을 들여 만들어 놓은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남이 그대로 모방해 사용한다면, 더욱이 그 모방자가 자기의 경쟁자가 돼 시장에서 경쟁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분노와 허탈은 극에 달할 것이다.

실제로 개발자와 모방자는 같은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발비용이 원가에 포함된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은 시장에서 애시당초 경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그러므로 개발 리스크는 최초의 개발자가 부담하고, 후발주자는 이를 모방해 영리를 취하는 사회, 창조에 대한 보답없이 모방에 대한 변명만이 횡행하는 사회, 이같은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개발자로의 위험을 부담하려 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는 모방과 정체는 있을지언정 창조와 발전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새로운 것을 우연히 알아낸 사람조차 타인에게 모방당하지 않기 위해 숨기게 되고, 다행이 그것을 자손이나 수제자에게 알려주고 죽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알아낸 지식은 사장되게 마련이다. 우리는 전래의 청기와장수 이야기에서 그러한 비극의 전형을 본다.

어느 나라보다 먼저 특허제도를 가졌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보호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미국이 정보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정보의 창조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더 우대함으로써 창조적 업무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21세기를 맞은 우리의 일차적 과제며, 정보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그것은 창조자들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상정(경희대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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