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법 위헌소지 없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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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늑장에 늑장을 거듭해온 여야의 선거법 협상이 8일 시한을 지킬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설연휴를 지나면서도 여야 3당의 고집.주장이 전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인구 상.하한선 9만~35만명을 토대로 해 26개 지역구 감축을 골자로 한 선거구획정위안과 1인2표제 관철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반면 한나라당은 9만~31만명을 상.하한선으로 하여 지역구 10.전국구 6석을 줄이되 1인1표제여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기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자민련은 두 가지 핵심쟁점 중 각각 한가지씩을 당론으로 정하고 있어 여당의 강행처리도 어렵게 돼있는 상태다.

가뜩이나 선거법 처리가 늦어져 불법.탈법 운동이 만연하는 판인데 8일까지도 처리가 안된다면 이로 인한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자결(自決)능력 없이 마냥 표류해온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선거관리가 제대로 될지, 그로 인한 정치혼란은 어떻게 될지 그게 걱정이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등 과거와 달라진 선거상황에서 새 선거법에 따른 수많은 관리규칙 개정, 선거관리예규 전면손질, 직원교육 및 선관위원 위촉 등 할 일이 태산 같은 선관위다.

여기에 1인2표제라도 도입되면 일거리는 훨씬 늘어나게 마련이어서 준비기간이 3개월은 돼야 하지만 남은 기간은 2개월여에 불과하다.

그러나 급하다고 어정쩡하게 선거법을 봉합해버리면 1차협상 때와 같은 야합 선거법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지금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치 중인 문제가 선거구 획정이다. 야당은 선거구획정위의 결정에 위헌(違憲)요소가 있다며 그 수용을 거부하고 있고 이것이 합의처리의 결정적 장애가 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민간대표들이 참여한 획정위 안을 여야합의대로 수용하기를 원칙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이상 사전 검증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995년 헌법재판소는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4대1을 넘으면 위헌이라는 판결과 함께 각 지역 인구수는 전국 인구를 선거구수로 나눈 수치의 60% 범위에 있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에 어긋나면 국회의 재량범위를 일탈한 것이라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이대로라면 하한 9만명-상한 35만명은 위헌 소지가 있다.

따라서 비록 자기편에 유리한 표밭마련을 위한 한나라당의 계책이라 해도 위헌 소지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헌재결정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서도 무시하는 것은 국회의 도리가 아니다. 혹여 선거법 통과 직후 위헌 제소가 이어지고 위헌판결이 난다면 그 혼란을 어찌할 것인가.

위헌소지가 제기된 이상 법적 자문을 거쳐 위헌소지 자체를 없애는 사전점검 과정을 확실히 거치는 게 지금 당장 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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