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열악한 분만환경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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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구(西歐)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 임산부들의 분만환경은 열악하다. 분만실에서는 남편이나 가족들이 임산부를 만나고 싶어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분만실은 병원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의료인들만 출입한다.

분만대기실에서는 대부분의 임산부들이 함께 진통을 겪으면서 수치심내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신생아실로 즉시 격리된다.

참으로 차갑고 외로운 환경이다. 임산부에게는 물론 태어나는 아기에게도 절대로 바람직한 환경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분만환경을 바꿔보자. 먼저 자신의 집처럼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음악도 필요하다면 들려줘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도 분만에 참여해야 한다.

다음으로 의료보험제도 등의 사회적 제약들을 개선, 임산부들이 원하는 분만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모든 여성은 품위있는 환경에서 분만할 권리가 있다. 탯줄을 자를 권리는 사실 남편에게 있다.

남편과 가족들이 참여할 때 비로소 새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공유할 수 있다. 새 생명들이 태어나는 분만과정은 온가족이 참여하는 축제처럼 진행돼야 하고 또한 사랑이 가득한 품위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임산부들은 분만실에서 아이를 낳으러 온 것이지 분만을 당하러 온 것이 아니다. 분만실의 주체는 당연히 임산부 자신이지 의료진이 아닌 것이다. 구미 각국에서는 수중분만.좌식분만 등 다양한 분만방법을 임산부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한다.

현행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 아래서는 원천적으로 모든 분만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술뿐이다.다양한 분만방법을 시도할 근거조차 봉쇄해 버린 것이다. 질병의 진단 및 치료에 드는 의료비를 정액화하는 포괄수가제가 전면적으로 시작되면 이러한 규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것은 임신과 분만을 '질병' 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임산부는 '환자' 가 아니다. 임신과 분만을 질병으로 보는 한 분만은 의료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부가 평생 낳는 자녀의 수가 이제는 2명 이하로 감소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부부의 일생에서 분만의 기회란 1회 또는 2회다.

이렇게 평생 한 두번에 그치는 분만은 당연히 가족의 참여와 사회의 관심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박문일 <한양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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