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BOOK] 아빠 어릴 적 놀던 얘기, 아이들에겐 상상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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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떴다! 방구차
박성철 글
김정진 그림
아이앤북
120쪽, 9000원

초등 저학년용 동화집이다. 책의 내용은 그 부모 세대의 일상이다. 평범한 하루가 웃긴 옛 이야기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딱 한 세대면 충분했다.

표제작 ‘방구차 따라잡기’는 소독차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요란한 발동기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골목으로 뛰어나갈 채비를 한다. 뭉게뭉게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방구차’.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동네 아이들이 다 나왔다. 모두 소독차 뒷꽁무니를 따라 있는힘껏 뛰어간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역을 막론하고 소독차가 다니고 아이가 있는 동네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야, 냄새 죽이제?” “이 방구를 마이 무야 배 속에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이 다 죽으삔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야, 너그들 이야기 들었나. 저 방구차 도착하는 데는 킹콩이 살고 있다더라.” 근거없는 말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 말에 솔깃해진 주인공 세훈이. 방구차를 끝까지 따라가다 길을 잃고 만다. “니 같은 놈이 한 달에 한 번씩은 생긴다”는 순경아저씨의 말도 실감난다. 엉성하지만 활력이 넘쳤던 옛 생활상이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게, 어른들에게는 따뜻하게 다가온다.

소독차 소리에 동네 아이들의 마음이 들뜬다. 구름처럼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가 이내 안개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아이앤북 제공]

소독차 외에도 뽑기 달구지(‘나는 뽑기왕’)와 연탄가스(‘연탄가스 중독 사건’), 개구리 잡기(‘맛있는 개구리 뒷다리’) 등도 동화의 소재가 됐다. 어른들도 잊고 살았던 아련한 추억이다. 그 때 그 시절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엔 어김없이 뽑기 달구지가 있었다. 1∼100까지 숫자가 적힌 바둑판 모양의 판. 그 위에 ‘왕잉어’‘배’‘권총’‘비행기’가 적혀있는 네 칸짜리 막대기 네 개를 적당히 배치한 뒤 분유통에 꽂혀 있는 숫자종이를 뽑는다. 확률로 따진다면 ‘꽝’이 될 확률이 무려 84%. 그런데도 뽑는 그 순간까지 유리상자에 들어있던 커다란 ‘왕잉어’가 내 것인 듯 싶지 않았던가. 이야기 속 준형이 역시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전과 살 돈까지 헐어쓰고 말았다. 뽑기가 뭔지 알고 모르고 상관없이 동심이라면 공감할 상황이다.

전작 『똥봉투 들고 학교 가는 날』에선 채변봉투의 추억을 다뤘던 작가는 “옛날 이야기 또 해달라며 메일을 보내는 어린이들이 많았다”며 이번 작품을 쓴 동기를 밝혔다. 공부 부담과 게임 중독, 왕따와 부모의 이혼, 다문화 가정과 빈부 격차 등 요즘 동화에서 흔히 다루는 갈등 상황이 없는 이야기. 아이들에겐 판타지만큼이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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