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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기획] 단체장 新관권선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신(新)관권' 이 16대 총선의 새 현상으로 떠올랐다.

야당 후보들이 경찰.행정기관의 편파성을 문제삼던 역대 선거와 달리 이번엔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당 후보들도 적지 않다.

영.호남, 충청권 등 기성 3당의 텃밭지역은 물론이고 수도권에서까지 단체장의 '내편 밀기' 가 노골적으로 이뤄진다.

법정 선거운동기간 개시(3월 27일)를 50여일 앞두고 불붙은 이같은 양상은 '선거전이 본격화할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 업적 홍보〓지난달 11일 주민 2백여명이 참석한 서울 A구의 구정(區政)보고회. "평당 1천만원을 호가하는 시유지를 서울시에서 헐값에 사들여 임대.매각해 7백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우리 지역 현역 의원들의 큰 도움을 받았다. " (구청장 B씨) 현역 의원 2명은 모두 민주당 소속. 지난해 연말 수도권 K시의 여성회관 강좌 수료식에선 P시장이 여성문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의원님이 장관들을 설득해주셔서 우리가 주요 시설을 따오는 등 대박이 터졌다" 며 참석한 C의원을 치켜세웠다. C의원은 "시장과 손잡고 모든 것을 끌어와 우리 시를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겠다" 며 화답했다.

자민련의 텃밭인 충청권에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이구동성으로 단체장들의 '자민련 밀어주기' 를 성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대전 A구에선 한 중학교 신축공사 기공식이 열렸다.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 L씨가 "삽질도 어려운 동절기에 무슨 기공식이냐" 며 교육청에 문의했다가 들은 것은 "기공식을 안한다고 지역 의원인 L씨가 재촉했다" 는 대답. 일종의 사람 모으기 행사였던 셈이다.

경북 ○○군의 민주당 입후보 예정자인 A씨는 "지난달 중순 군수가 읍.면사무소 순시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중앙부처에서 10억원의 여성 복지회관 건립비를 따왔다고 홍보하고 다녔다" 고 주장했다.

◇ 선심 및 편파행정〓서울 B구의 1~3월 구청 발주공사는 71억5천만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배나 급증했다. 하수도 보수.준설 공사 등에만 30억원이 새로 배정됐다.

한나라당 지구당에선 "신규 공사 대부분이 날씨가 풀린 다음에나 할 것들" 이라며 "돈을 미리 풀어 밑바닥 민심이 민주당에 유리해지도록 구청장(민주당)이 움직이고 있다" 고 비난했다.

구청장이 한나라당 소속인 서울 강남지역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A씨는 요즘 운동원들 이탈 방지에 부심하고 있다.

"음식점 등 구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우리쪽 운동원들이 '구청의 보복이 두려워 돕지 못하겠다' 고 고개를 흔든다" 는 것. A씨는 "우리쪽엔 구청에서 아예 공식 행사를 통보도 해주지 않을 정도로 따돌림당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 '신 관권' 역풍〓무소속으로 당선된 일부 단체장은 지역구 의원에 대해 홍보 대신 오히려 표 깎아내기를 하는 데 '관권' 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부산 A구청이 지난달 25일자로 발행한 구정(區政)신문 2면엔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J의원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칼럼이 실렸다.

지역구 의원이 구청 예산 확보에 애썼다는 J의원의 의정보고서가 거짓말이라는 주장. 'J의원측은 "구청장은 지난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나가 어렵게 당선된 인물로 이번 총선에서 우리 의원이 당선되면 또 자신이 공천받지 못할까봐 가는 곳마다 욕을 하고 다닌다" 고 주장했다.

◇ 배경〓여야의 극심한 경쟁도 한 원인이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천에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에게 밉보인 현역 단체장들이 대거 낙천(落薦)한 뒤 살아남은 단체장들의 눈치보기와 밀어주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민주당 선거 관계자는 "1996년 15대 총선 때만 해도 현역 의원과 위원장이 다음 공천에서 단체장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98년 선거를 겪고난 뒤 사정이 달라졌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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