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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한춘택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TV속에서 조금만 슬픈 이야기가 나와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5학년짜리 착한 아들과 엄마 생일날 자기가 손수 만든 스킬자수 액자를 선물하며 엄마 등을 두들겨주는 예쁜 딸을 가진 38살난 주부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다 컸고 조그만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까 하는 생각에 평상시 관심이 많았던 텔레마케터 교육을 받게 됐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열심히 교육을 받는 주부들 속에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주인공은 내 옆자리의 40살 먹은 언니였다. 그 언니가 필기구를 넣고 다니는 헝겊 필통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하고 색이 바랜 몹시 낡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왜 저런 것을 버리지 않고 갖고 다니나 의아했는데 다음날 화장품을 담아온 조그마한 손가방은 더 가관이었다.

참다못해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언니는 지퍼가 다 고장난 손가방을 집게로 고정시켜 갖고 다녀? 그리고 그 필통은 10년도 더 넘었겠다. " 그랬더니 언니는 밝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 필통은 내가 중학교 때 우리 사촌오빠가 나한테 선물한 건데 조금 더러워져도 빨아서 쓰면 정말 예뻐. 이 손가방은 초등학교 때 내 친구가 선물한 건데 여러가지 물건을 담을 수 있어서 너무 편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물건들을 볼 때마다 난 그 친구와 사촌오빠의 따뜻한 마음이 생각나. "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언제나 쉽게 아이들이 사달라는 물건을 사주고 조금만 싫증나도 금방 다른 것으로 바꿔주었던 나. 정(情)이 담겨있지 않은 물건에 아이들이 애정을 가질 리가 없지 않은가.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쪼록 올해에는 그 언니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그녀의 착하고 알뜰한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한춘택<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한춘택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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