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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비전을 말한다] 백성기 POSTECH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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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백성기 POSTECH 총장은 9일 “학사 관리를 철저히 해 전체 재학생의 5~10%는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백 총장은 “입학은 어렵고 졸업은 쉬운 한국 대학의 고질적인 병폐를 깨야 한다”며 “POSTECH은 뽑는 경쟁에서 가르치는 경쟁에 힘쓰는 모델 대학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1987년 개교 때부터 올해까지 이 대학의 전체 재학생(4만9051명) 중 6.4%(3134명)는 학사 경고를 맞거나 성적 불량으로 제적됐다. 그는 또 “올해부터 정년 보장(테뉴어)을 받은 교수에 대해서도 3년마다 평가를 실시해 교수 간 경쟁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정년 보장 교수 평가는 국내 대학 중 POSTECH이 처음 도입한 제도다. 백 총장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열적으로 대학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미래의 대학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창출하는 기능을 해서는 안 된다. 지식을 기업과 연결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주체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보스턴 지역의 바이오 클러스터(집합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POSTECH도 포항 지역의 기업 혁신을 이뤄내고 지식 클러스터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할을 하려면 대학이 어떻게 해야 하나.

“최고의 교수진으로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을 쓰게 하고 이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교수 평가와 인센티브 시스템은 외국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교수들 간 경쟁을 이끌기 위해 연봉에 큰 차등을 둔다고 들었다.

“50대 중반의 정교수급(재직기간 20년 내외)의 연봉을 보자. A교수는 연봉 2억1800만원(업적·성과급 1억300만원), B교수는 1억850만원(업적·성과급 1650만원)을 받는다. 두 배 차이가 난다. 연구 성과를 기준으로 하는 업적과 성과급만 따지면 7배다.”(※나이나 재임기간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업적과 성과급 차이는 10배 이상 나는 경우도 있다.)

-교수들이 이런 연봉체계를 수용하나.

“연봉제는 개교 때부터 도입했다. KAIST보다 먼저 했다. 올해부터는 정년 보장(테뉴어)을 받은 교수들도 3년마다 평가를 한다. 교수가 살아 움직여야 학교가 살고, 학생들의 실력이 오른다.”

-정년 보장을 한 교수를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말인가.

“3년마다 교육·연구·봉사 부문으로 나눠 평가한다. 평가 결과가 부진하면 연봉이 조정되는 불이익을 받는다. 연구 성과가 떨어지면 수업 등 교육을 더 하게 하는 조치를 할 것이다.”

-POSTECH이 세계 정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생명(BT) 분야는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다. 철강을 포함해 다양한 소재 분야에 최고의 교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에도 우수한 교수들이 있다. 이처럼 2~3개 분야에 집중 투자해 세계 정상으로 수준을 끌어올리려 한다. 또한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만들어지면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방사광 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나오는 강한 빛으로 극히 미세한 원자 세계를 보여주는 시설이다. 한국에는 POSTECH에 3세대 가속기가 있다. 4세대 가속기는 X선 자유전자 레이저를 활용하는 기술로 현재 건설을 추진 중이다.)

-국내 대학들이 연구 중심을 지향해 교수들에게 성과를 강조하다 보니 학부 교육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있다.

“대학들의 학사관리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졸업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POSTECH은 이런 면에서 가차없다. 학부 학점 4.3점 만점에 2.0 이하는 학사경고를 주고, 두 번 경고 후엔 1년간 정학, 정학 두 번이면 제적 및 퇴학 조치한다.”

-학사경고나 제적자는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입학한 학생의 6%가 제적됐다. 국내 어느 대학도 이런 조치를 한 곳은 없을 것이다. 등록금 의존율이 낮은 데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많이 주는 만큼 학사관리는 앞으로도 철저히 할 것이다.”(※2008년 기준으로 전체 학생 대비 학사경고자는 서울대 0.16%, 연세대 0.48%, 고려대 0.47%였다.)

-학생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2008년부터 신입생 300명 전원을 기숙사 생활을 하게 했다. 학생들이 2년 동안 수학·과학·영어 능력을 키우도록 기숙대학을 운영하는 것이다. 인문사회학부 교수들이 2년간 지도교수를 맡아 소양교육을 맡는다. 수학Ⅰ·Ⅱ 두 과목은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고, 영어도 일정 등급을 넘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다.”

-국내 대학이 잘 가르치기 경쟁을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등록금 의존율이 높다 보니 대학이 그 뒤에 숨고 있다(※대학 재정 확보를 위해 학생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뜻). 철저한 학사관리가 필요하다. 학업 능력이 떨어지면 퇴학을 시켜야 한다. 최근 나온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보면 미국에서는 큰 대학을 가든 조그만 대학을 가든 배우는 데 큰 차이가 없다. 미국에서 화학이나 의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25명을 어느 대학 학부 출신인지 조사해 보니 23~24개 대학에서 나왔다는 게 그 증거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6일 수시 합격자 300명을 선발했다. 어떤 학생을 뽑았나.

“예년보다 전국에서 골고루 학생들이 왔다. 다른 과목 성적이 안 좋아도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합격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내신성적을 점수화해 반영했으나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성적이 오르고 있는 학생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지방 학생이 유리했다. 이것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실시한 효과다.”

-내신성적만 놓고 볼 때 뒤처진 학생들도 있었을 텐데.

“합격한 학생의 20~30%는 내신성적은 뒤떨어졌으나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로 판단돼 합격시켰다.”

-잠재력 판단의 기준이 뭔가.

“배우려는 열정과 의지다.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학생은 중간에 탈락할 확률이 낮다.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학원에 의존한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글=강홍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백성기 POSTECH 총장=1949년 수원생. 71년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81년 미국 코넬대에서 세라믹 재료 분야 박사학위를 받은 재료공학분야 권위자다. 세계적인 학술지에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POSTECH 설립 준비 단계부터 참여했다. 고 김호길 초대총장의 권유로 연구소 자리를 박차고 귀국했다. 94년 국내 학자 중 처음으로 국제세라믹스 학술원 회원이 됐으며, 2007년부터 제5대 총장을 맡고 있다. 운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에 취미는 애완견 데리고 산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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