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선거운동 '법 따로 대통령 따로' 검·경에 문의 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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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록 친목단체들이 은밀하게 선거운동을 해왔지만 이를 양성화하는 것은 문제다.

절도가 횡횡한다고 아예 절도죄를 없애는 것이 옳은가" "그러면 앞으로 종친회 등의 선거운동을 수사하지 말아야 하느냐" -.

시민단체는 물론 동창회.종친회 등의 선거운동을 허용하자는 취지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발언내용이 전해진 20일 오전 대검에 일선 검찰은 물론 시민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이들은 대부분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는 공감하면서도 동창회.종친회 등의 선거개입까지 무차별 허용하다 보면 선거판이 극도로 혼탁해져 자칫 '무정부 상태' 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대검 관계자들은 뚜렷한 지침을 내리거나 적절한 답변을 못하는 등 곤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반박하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법 적용을 포기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선거사범을 단속해야 할 대검 공안부장과 과장들은 대통령 발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느라 이날 회의를 계속했다.

공안부의 한 관계자는 "수뇌부로부터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한 상태" 라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선거법 87조(단체의 선거운동 금지)를 없앤다고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활동이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고 못박았다.

그는 "선거운동은 운동기간(선거일 전 17일간)에만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사전선거운동(254조)에 해당하기 때문에 단속 대상" 이라고 말했다.

공안관련 부서 관계자들의 설명이 '단속 고수' 쪽으로 흐르고 있는 가운데 대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취지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내렸다.

신승남(愼承男)대검 차장은 이날 "선거법 조항이 개정되는 등 정치권과 국민여론의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과 관련한 고소.고발 사건의 처리를 미루겠다" 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법도 사회 전체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지 사회 따로, 법 따로일 수 없다" 고 밝혀 선거법 87조 위반사항 등에 대해선 사실상 사법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검찰과 함께 경찰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청 관계자는 "선거법 개정문제로 시끄러운 와중에 향우회.동창회의 선거운동 허용관련 얘기까지 나오니 상당히 복잡하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막상 단속에 들어갔다가 법이 개정돼 불법이 아닌 것으로 되면 우리만 입장이 난처하게 될 것" 이라며 "하루 빨리 정확한 입장이 정해져야 선거관련 단속지침 등을 마련할 수 있다" 고 우려했다.

신동재.강갑생.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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