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파워] (상) 컴퓨터에서 여론이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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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가상공간의 네티즌이 정치.사회 현안에 한 목소리를 내며 시민단체에 이어 '제6의 부(府)' 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의 활동에 대해 "새로운 대안세력의 출현" 이라는 긍정적 시각과, "저급 패거리 문화의 표출" 이라는 부정론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네티즌 파워의 실태와 문제점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집중 조명한다.

"젊은이들이 군대에 갈 수밖에 없는 지금, 당신들의 결정에 남성을 반납한다. "

헌법재판소의 군필자 가산점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난 지난해 12월 23일. 헌재 홈페이지의 사이트에는 결정을 비난하는 글귀가 하루에만 1백50건 올랐다. 24일 1천여건. 25일 오전 8백여건. 마침내 헌재의 컴퓨터 서버는 네티즌에게 무릎을 꿇고 25일 오후 마비됐다.

네티즌은 '전방위' 공격을 시작했다. 행정자치부 홈페이지의 게시판이 해킹당하고 청와대.국방부.국가보훈처 사이트에도 포화가 쏟아졌다. PC통신엔 '군번 시위' 가 펼쳐지고 '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 사이트까지 개설됐다. 이런 열기는 기존 언론매체와 사회단체로 이어지면서 결국 지난 6일 정부.여당은 가산점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네티즌은 4.13 총선을 앞두고 더욱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부적격 후보의 낙선운동을 벌이고 있는 '총선 시민연대' 홈페이지(http://www.ngokorea.org)에는 지난 12일 개설 후 5일만에 5만여명이 방문했다. 낙선운동에 대한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에도 1만9천여명이 참여했을 정도다.

총선시민연대 관계자는 "정치권의 반발과 검찰의 위법성 검토 등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낙선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원동력은 네티즌의 뜨거운 호응" 이라고 단언했다.

컴퓨터망에서 독자적인 의견을 개진해 오던 네티즌이 새 밀레니엄을 맞아 거대한 여론주도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제5의 부로 일컬어지는 시민단체에 이어 네티즌이 '제6의 부' 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말 현재 국내 PC통신 이용자는 1천만명, 인터넷 이용자는 7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한 인터넷 전문기관이 조사한 네티즌의 특성에 따르면 전체의 68.6%가 20.30대이고, 대졸이상의 학력 소지자도 53.5%를 차지한다. 또 서울(33%).부산(8.5%) 등 7대 대도시 거주자가 61.9%에 이른다.

각종 현안에 대한 네티즌의 입장 표명이 정책 결정의 무시못할 잣대가 되면서 국정홍보처는 지난달부터 네티즌의 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사이버 국정모니터 요원 5백여명을 모집 중이다.

'인터넷 메트릭스' 의 조일상(趙一相)이사는 "여론광장 등을 이용해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이 전체 인터넷 이용자 중 약 55%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 네티즌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당시엔 PC통신을 통해 가요.광고.방송 등에 대한 의견 개진이 고작이었다.

상당수 인터넷 전문가들은 "지난해 10월 한 의류업체의 도메인 공모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자 해당 기업이 항복할 때까지 '사이버 집회.시위' 를 벌인 것이 네티즌의 힘이 본격적으로 결집된 국내 첫 사례" 하고 말한다.

곧 이은 군 가산점의 시비를 통해 네티즌 운동은 단순한 소비자 운동을 넘어 정치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함께 하는 시민행동' 의 하승창(河勝彰)사무처장은 "네티즌이 이번 총선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올해가 사이버 민주주의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정보통신행정연구소 홍준형(洪準亨)소장은 "현실 세계에서 의사 참여가 자유롭지 못한 젊은층이 컴퓨터 속의 가상세계로 몰리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사회부 사이버팀〓최민우.우상균.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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