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경제각료들] 鄭 前산자 "저격수 공격" 낙마이유 비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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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3일 개각으로 떠나는 장관들의 변(辯)과 뒷얘기들이 이.취임식으로 부산한 관가(官街)에서 온종일 화제로 떠올랐다.

발표 직전에야 자신의 경질사실을 알았던 정덕구(鄭德龜)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14일 신임 김영호(金泳鎬)장관과 함께 치른 이.취임식에서 "나라가 필요로 하면 북극인들 못가겠는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의병이 돼서라도 돕겠다" 고 말했다.

鄭전장관은 특히 이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가드를 올린 채 싸운 적이 한번도 없다. 가드를 내린 채 도처해 잠복해 있는 저격수의 공격에 맞서 공직생활에 임하면서 장관까지 오른 것은 하느님의 축복" 이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자신의 '낙마' 가 '저격수' 에 의한 것임을 은근히 표출했다.

실제로 그는 '단기필마' 로 부임해 많은 정책과제를 '불도저' 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산자부 관료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鄭전장관은 재임기간 중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오늘 당장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 두달 정도 국내외로 여행을 다닐 것" 이라고 계획을 털어놓았다.

역시 이날 오전 금융감독원 강당에서 진행된 이헌재(李憲宰)신임 재경부 장관의 금융감독위원장 이임식에서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진행해온 기업.금융기관의 구조조정 과정을 회고하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네차례나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李장관은 "직원 여러분의 노력과 헌신을 제 마음의 빚으로 새기겠다" 며 우선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지난 2년간의 고통과 시련이 21세기의 자랑스런 한국을 만들기 위한 산고이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고 말했다.

그는 이어 '踏雪野中去(눈덮인 광야를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이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인용하면서 직원들이 소명의식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한국의 개각과 관련, 李신임 장관을 집중조명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그를 '경제위기 극복의 주역' 으로 소개하면서 "재경부 장관으로서 개혁을 한층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고 보도했다.

도쿄(東京)신문은 "李장관이 경제의 투명성.국제성을 중시해 해외로부터의 평은 좋지만 한국기업들에는 '저승사자' 로 불리고 있다" 고 설명했다.

홍병기.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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