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박정환, 자신의 칼에 찔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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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본선 32강전>
○ 박정환 4단 ● 천야오예 9단

제15보(136~143)=천야오예의 수순이 컴퓨터보다 정확하게 맥을 짚어온다. 흑▲와 백△의 교환, 그 다음 흑●로 젖힌 수순이 박정환에겐 뼛속을 파고드는 독침과 같다. ‘참고도1’ 백1은 흑4에서 수상전인데 교묘하게 백이 한 수 부족이다. 부득이 136 끊어야 했고 137에 이르러 천지대패가 났다.

138로 따냈을 때 흑엔 139의 팻감이 자랑이다. 반상에 존재하는 유일무이의 팻감. 하나 백엔 팻감이 단 한 개도 없다. 수도 한 수 차이, 팻감도 하나 차이. 박정환이 140에 둔 것은 생명 연장의 처절한 버팀이다. 흑이 받아주면 A의 팻감이 생긴다. 그러나 천야오예는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141로 패를 따냈고, 142 때 143으로 때려 와르륵 들어냈다. 돌을 들어내고 보니 중앙이 폐허처럼 황량하다. 다 죽었다. 만사는 끝났다. 박정환은 여기서 돌을 거뒀다. ‘참고도2’ 백1로 뚫고 나가도 6까지 안 된다. 중앙 대마는 B와 C가 맞보기라 살 길이 없다.

좋은 바둑이었다. 그러나 결정타라고 믿었던 수가 함정에 빠져드는 수였을 줄이야. 바둑은 가슴에 꽃 대신 칼을 품는 자가 이긴다. 그러나 그 칼은 언제나 나를 찌를 수도 있다. 16세 박정환은 그걸 배웠을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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