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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북송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리 정부의 탈북자(脫北者)정책이 시련을 맞고 있다.

중국을 통해 러시아로 넘어간 탈북자 7명이 양국으로부터 잇따른 강제추방 뒤 북한으로 되돌려진 사건 때문이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 대외비 접근 속에 '조용한 외교' 를 내세우던 우리 외교통상부는 탈북자의 북송이 확인된 '공개' 상황을 맞아 난감해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중관계와 남북관계 전반을 고려할 때 '조용한 교섭이 실리면에서 낫다' 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로 넘어간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교섭에는 극도의 보안과 비공개 원칙이 유지돼야 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탈북자들이 서울에 올 때 '제3국 경유'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런 사정을 감안한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때문에 탈북자 문제에서 'NCND(확인도 부인도 안함)' 가 가장 유효한 대책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부 종교단체와 야당은 '공개적인 적극정책' 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난민 지위' 를 탈북자들에게 적용하도록 중국과 러시아측에 외교적 압력을 넣어야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번 7명의 탈북자 사건은 인적 사항이 공개된 상태에서 진행됐고 그 결과는 탈북자의 북송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4일 이정빈(李廷彬) 신임 외교통상부장관을 만나 "러시아 탈북자 문제가 (언론에)보도돼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이들을 송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고 지적한 것은 이런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국제법적으로 중국과 북한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고 강조했다.

공론화를 통한 공개적 해결수단은 역효과만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4강(强)외교가 튼튼하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과 달리 안이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 탈북자들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또 중국이 북한으로 송환하는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탈북자 문제를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춰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탈북자 문제를 놓고 비공개 교섭의 이점과 국제여론의 힘을 적절히 배합하는 외교적 지혜가 아쉽다" 고 강조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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