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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대입 논술] 서울대 문제 전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문제>

다음 제시문을 읽고 아래 논점들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히면서,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를 논술하라.

-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이란 어떠한 인간인가?

- 아이들에게 도덕교육은 불가능한가?

<제시문>

대이성(理性)을 갖추는 시기에 도달할 때까지는 도덕적 존재라든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념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되도록 그런 관념을 나타내는 말은 아이들 앞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처음에 그런 말에 대하여 잘못된 관념을 갖게 되면, 성인이 돼서도 바로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머리 속에 새겨진 최초의 잘못된 관념은 오류와 악덕의 씨가 된다.

따라서 첫발을 특히 주의해 내딛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가 감각적인 사물에 의해서만 자극을 받는 동안에는 아이의 모든 관념이 감각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주위 어디를 보아도 감각적인 세계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는 당신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든지, 또는 당신이 말하는 도덕적인 세계에 대해 평생 지울 수 없는 환상적인 관념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아이와 함께 토론하라. "

- 어떤 철학자가 제시한 중요한 준칙이다.

이 말은 오늘날 대단히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준칙을 지킨 결과는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나는 어른과 토론을 해온 아이처럼 어리석은 존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모든 능력 중에서 이른바 다른 모든 능력들을 종합한 능력인 이성은, 가장 까다로운 길을 통해, 그리고 가장 늦게 발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해 다른 능력을 발달시키려 하고 있다.

훌륭한 교육이란 이성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성에 의해 아이를 교육하려 한다.

그것은 교육을 맨 마지막 단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즉, 목표를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아이가 이치를 분별한다면 그들을 교육 시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아이에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말만으로 만족하는 습관을 들여 주고, 또 아이들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일일이 따져서 자신이 마치 선생과 똑같이 지혜로운 인간인 양 착각하게 하여 논쟁을 좋아하는 반항아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어른이 합리적인 동기에 의해 무엇인가를 아이에게 요구한다는 것에는 반드시 탐욕이나 불안.허영심 따위가 결부돼 있다.

사람들이 아이에 대하여 행하는, 혹은 행할 수 있는 도덕 교육의 교훈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생: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 왜 안 되죠?

선생: 그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아이: 나쁜 짓?어떤 것이 나쁜 거죠?

선생: 금지되어 있는 일을 말한다.

아이: 금지되어 있는 일을 하면 어째서 나쁜가요?

선생: 너는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게 된다.

아이: 그럼, 남들이 모르게 하면 되지요.

선생: 누군가가 네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이: 숨어서 하겠어요.

선생: 네게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아이: 거짓말을 하면 되죠.

선생: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 왜 거짓말을 하면 안되나요?

선생: 그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

이것은 피하기 어려운 순환이다.

여기서 더 벗어나면, 아이는 당신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이것은 참으로 유익한 교훈이다.

사람들은 이 대화를 어떤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선과 악을 아는 것이나 인간은 왜 여러 가지 의무를 지켜야 하는지 등의 문제는 아이들이 이해할 영역이 아니다.

자연은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이로 있기를 원한다.

이 순서를 어지럽혀 놓으면, 익지도 않고 맛도 없는 그리고 곧 썩어버리는 과일을 만드는 꼴이 된다.

우리는 어린 박사와 늙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아이에게는 아이 특유의 사물을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느끼는 법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방법 대신 어른들이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처럼 분별없는 짓은 없다.

따라서 열 살 된 아이에게 판단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에게 6척의 키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사실 그 정도의 나이에 이성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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