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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질주!IT혁명] 6.비즈니스의 영역이 없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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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브라질 최대 은행인 방코 브라데스코(Banco Bradesco)의 경쟁사는 어디일까. 미국의 시티은행.독일의 분데스방크.일본의 도쿄미쓰비시은행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데스코의 알치노 로드리게스 정보담당 이사의 대답은 다르다.

"물론 금융업이 주업무다 보니 세계 유수 은행들이 경쟁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의 경쟁사는 은행만이 아니다. 세계 유수의 백화점과 통신업체, 초콜렛 제조업체,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그만 슈퍼마켓까지도 우리의 경쟁자다. 현재 우리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

이유는 이렇다. 96년 브라데스코는 브라질 최초로, 전세계에서는 다섯 번 째로 인터넷을 이용한 은행업무 서비스를 개시했다.

고객들에게 보다 편하고 빠른 금융서비스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국내외 정보통신기술(IT)전문인력을 총동원, 전국의 2천2백개 지점을 연결하는 시스템(BradescoNet)을 구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스템 개설 당시 20여만명에 불과하던 온라인 뱅킹 고객수가 지난해 후반에는 70만명 수준으로 늘어났고 지금도 월 평균 12%씩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다.

이용객이 늘자 한 은행 간부가 은행 온라인 시스템에 쇼핑몰을 연결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은행 이사회는 이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현재 이 은행 온라인에는 초콜렛에서 통신기기까지 약 40여개의 쇼핑몰이 개설돼 있는데 이용객이 하루 50만명을 넘는다. 외신은 이를 두고 "브라데스코는 더 이상 브라질의 최대 은행이라고 부를수 없다. 2~3년 내로 브라질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라 부르는 편이 어울릴 것 "이라고 전했다.

IT의 발전이 가져온 이같은 업종간 비지니스 영역 파괴로 선진국 대부분 업체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IT의 미래를 가장 잘 예측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MIT 대학의 ' 전략적 조정 모델(Strategic Alignment Model)을 살펴보자.

이 모델은 IT 발전의 첫 단계를 회사 각 부문의 전산화(Local Exploitation)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회계 시스템의 전산화나 판매 시스템의 자동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어 회사 전체의 시스템을 통합하는 내부통합(Internal Integration)단계로 발전하고, 다시 비지니스 효율성과 연관시킨 비지니스 과정 재조정(BPR.Business Process Redesign)으로 이어진다. IT를 이용해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업무를 효율화하며, 신속한 업무처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 기업도 현재 BPR 단계를 거치고 있으며, 늦어도 내년까지는 다음 단계인 비즈니스 망 재구축(BNR. Business Network Redesign)에 들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세계 유수 기업들이 엄청난 규모의 기업 인수.합병(M&A)를 서두르는 것도 고객들을 자사 네트워크로 끌어들이려는 BNR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인 새로운 비지니스 영역 창출(BSR.Business Scope Redefinition)단계에서는 모든 업종간 비지니스 영역이 무너지게 된다. 세계 초일류 기업들은 이미 이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상태다.

아주대 정보통신경영대학원의 이강우 교수는 "이미 세계 유수기업들의 상당수가 이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늦어도 내년말까지는 세계기업의 절반 이상이 업종에 관계없이 무차별 경쟁을 벌이게 될 것" 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종합가전업체의 대명사 '소니' 가 소매금융업체들과 치열한 경쟁관계라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사실이다.

소니는 지난해 12월 자사 영업망을 이용한 온라인 뱅킹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소매금융업에도 진출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올해만 2백억~5백억엔을 투자해 5년내 1조엔의 소매 금융실적을 올린다는 야심을 갖고 연말까지 일본 전국의 편의점 혹은 우체국에 현급 자동지급기까지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금융업계는 이를 두고 "앞으로 사업의 승패는 고객들에 접근하는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구축하고 있는가에 달려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소니의 금융업 진출은 가히 공포적" 이라고 평했다.

비지니스 영역 파괴는 비단 제조업이나 금융업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 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업체와 컨설팅 업체간 치열한 경쟁은 이미 불이 붙어 있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MS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거대 컴퓨터 제조업체인 IBM은 지난해 컨설팅업에 진출했다. 자사의 영업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천만 고객들에게 컨설팅 정보만 제공하면 힘들이지 않고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세계 기업들의 폭발적인 컨설팅 수요도 한몫을 했다. 당연히 매킨지.부즈앨런 해밀턴.보스턴 컨설팅그룹.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 등 세계의 내로라 하는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는 지난해 4억달러를 들여 아시아지역 파트너와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컨설팅을 위한 3~7일간의 합숙훈련을 실시했다. 부즈앨런은 인터넷 디자인업체와 제휴하는 방안으로 인터넷 컨설팅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국세청인 IRS는 수년전 세금 서비스(정산업무)회사인 H&R Block과 제휴, 여신업에 진출했다. 납세자들의 납세실적이 곧 최고의 신용평가자료라는 사실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H&R Block은 현재 미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신용평가회사이자 여신업체로 발돋움했다.

이같은 현상은 IT 발전이 계속되면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3년동안 IT산업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증가에 30%의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IT 사용 인력은 96년 4천1백만명에 달했고 지난해에는 5천만명에 육박,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이 IT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실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그의 저서 '생각의 속도 Business@The Speed of Thought 에서 "IT 발전을 통한 비지니스의 새로운 영역창조는 21세기 세계경제의 화두가 될 것 "이라며 " 이는 곧 변하지 않는 기업과 개인의 퇴출을 의미한다" 고 적고 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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