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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질주! IT혁명] 3.사이버 유통, 생산 · 물류 모두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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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남대문시장 내 수입상가에서 경향전자를 운영하는 정세영(37)씨는 요즘 '인터넷 시대' 를 실감하고 있다.

정씨는 소니.파나소닉 등 수입상품을 인터넷의 전자상거래 가격 수준에 맞춰 팔고 있다.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소니 미니디스크(MD)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 거래가격(3백49.95달러)을 참고해 이보다 약간 싼 35만원에 팔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이같이 물건을 싸게 판 것은 아니다. 점포를 자주 찾는 청소년.회사원들이 걸핏하면 인터넷 전자상거래 가격을 들먹이며 비싸다고 따져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을 조금 더 낮춘 것. 정씨는 "고객들이 전자상거래 상품가격을 미리 알고 오기 때문에 값을 흥정할 필요가 없어져 편한 측면도 있다" 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거래가 재래시장의 뿌리깊은 바가지 가격 시비를 해결한 셈이다. 즉 어느새 전자상거래가 물가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물가상승이 우려되므로 단기금리 상승을 용인하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난해말 주장하자 재정경제부는 '인터넷을 통한 유통.물류혁명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물가 오름세가 그다지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고 반박하고 나서기도 했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유통업계의 기존 거래관행을 급속히 무너뜨리고 곳곳에서 ▶가격▶물류▶상품▶서비스 혁명을 불러오고 있다.

◇ 국내 전자상거래 어디까지 왔나〓인터넷 쇼핑몰 전문업체인 한솔CS클럽과 삼성물산의 인터넷 쇼핑몰은 지난해 12월 한달 매출이 1백억원을 넘었다. 이들 업체는 각각 회원 1백여만명에 연간 15만건 이상을 거래한다.

백화점들이 개설한 쇼핑몰도 하루평균 1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롯데 인터넷쇼핑은 지난해 초 하루 1천만원에도 못미쳤던 매출이 1년 새 10배로 뛰어 지난해 말 1억원을 넘어섰다. 백화점업계는 사이버 거래가 아직 매장에서 파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00년대 중반이후에 매장 매출을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인터넷 쇼핑몰 등을 포함한 국내 전자상거래 업체는 1천5백여곳. 거래품목도 컴퓨터.여행.책.음반 중심에서 보석.의류.식음료 등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대.대우.기아 등 자동차 메이커도 수백만~수천만원 짜리 자동차를 전자상거래로 팔고 있다. 업계는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이 연평균 1백%이상의 높은 성장을 보이면서 2003년에는 1조7천억원에 이를것으로 추정했다.

◇ 거래의 투명성 가져와〓전자상거래가 확산되면서 기업간 납품 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구매 담당자가 제조업체를 선정해 가격을 흥정하거나 수의계약하던 방식이 이른바 '인터넷 입찰' 로 바뀌고 있다. 납품업체들이 인터넷망을 이용해 공급가격을 동시에 입력,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서 물건을 사는 방식이다.

LG유통의 경우 지난해 2월부터 인터넷쇼핑몰에 '비딩 시스템' 을 구축해 수퍼마켓.편의점에서 판매할 상품을 인터넷 입찰 방식으로 구매하고 있다. LG는 지난해 1백30회의 인터넷 입찰로 2백억원 어치를 구매해 33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LG는 앞으로 코카콜라와 같은 독과점 제품이나 매일 가격등락이 심한 일부 농산물을 제외하고 모든 품목을 인터넷 입찰로 구입할 계획이다. LG유통 관계자는 "인터넷 입찰을 통해 평균 20%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뒀다" 며 "작년에는 도입 초기라서 인터넷 입찰 물량이 전체(5천5백억원)의 3.6%에 그쳤지만 올해는 그 비중을 18%까지 높일 계획" 이라고 말했다.

전자상거래는 또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직거래를 가능하게 만든다. 기존의 생산자→도매업자→소매업자→소비자 등의 복잡한 유통단계를 생산자→소비자로 줄인 것. LG경제연구원 박병수(朴炳洙) 수석연구원은 "전자상거래를 통한 유통단계의 축소는 도매업자를 사라지게 해 고질적인 무자료 거래 관행까지 바꾸고 있다" 고 말했다.

◇ 물류혁명 앞당겨〓지난해 4월 문을 연 사이버 물류시스템 업체인 로지스클럽은 출범 9개월만에 2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로지스클럽은 물건을 싣고 온 뒤 빈차로 돌아가는 화물차량을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화물주인에게 제공한다. 이밖에도 ▶창고업체를 지역별로 분류한 보관.하역 정보▶국제운송 서비스▶물류진단▶관련업계 전화번호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대신정보통신의 오케이맵 등 10여개의 물류관련 업체들이 성업중이다. 로지스클럽 관계자는 "인터넷 물류체제 구축으로 화주가 일일이 전화번호를 찾아 중소 운송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번거로움을 덜게 됐다" 며 "10대중 4대꼴인 도로상의 빈 트럭 운행을 빠른 시일내에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고 말했다.

◇ 상품도 변화시킨다〓전자상거래의 정착으로 기존의 대량구매.대량생산 체계가 다품종.소량생산 체제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터넷 업체인 하나비는 가정 생활용품인 김치.귀금속.화장품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을 열고 주문자 요구 생산방식의 판매 기법을 도입했다.

고객이 자기 집에서 담그는 재료를 써 만든 김치와 같은 수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업체는 귀금속도 어떤 모델에 대해 금이나 보석의 종류를 선택해 고르게 함으로써 고객이 매장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도록 했다.

용산전자상가 내 중소형 컴퓨터업체를 중심으로 소비자 취향에 맞춘 주문형 상품거래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끈 델 컴퓨터가 소비자가 원하는 사양과 가격대로 맞춤형 상품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국내 전자상거래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 소니사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소니가 오는 2001년 게임과 영화.음악 등을 광케이블망을 통해 각 가정의 '플레이 스테이션 2' 에 직접 연결해 판매하는 전자전송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주문.결제뿐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디지털화해 가정에 즉시 배달하는 구조다. 현재 두루넷이 영화 등을 디지털화해 선뵈고 있어 국내에서도 1~2년안에 다양한 관련 디지털화 상품들이 유통시장을 누빌 전망이다.

김시래.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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