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신춘중앙문예 희곡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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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무대라는 한정된 조건을 갖는 희곡은 매장면 극단적인 절제와 빈틈없는 계산을 요구한다. 불필요한 여유와 장식은 무대 위에서 이내 연극성의 와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응모작들이 이런 점들을 간과하고 있어서, 좋은 소재를 택하고도 제대로 효과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결함들을 극복하고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몇개의 작품들 중 '모기' (류세균)는 등장인물들의 성격구성이 뛰어났지만, 배노인이 갈망하는 인간적 접촉을 굳이 동성애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보편적 공감대를 약하게 했고 극의 전개가 단조로웠다.

'장유유서' (배성철)는 유장하고 걸쭉한 대사, 세련된 진행 등이 두드러졌지만 지나치게 장식적인 대사에 비해서 내용은 빈약해서 균형을 잃었다. '죽을 사람 이씨 간병기' (정동화)는 잘 진행되던 내용이 후반에서 힘을 잃어 아쉽게 무너졌고 '놀보전, 그 속사정' (임은정)은 발상이 신선했던데 비해 구축력이 떨어졌다. '하지' (김혜정)는 진부한 소재를 담담하게 다루는 객관적 시각,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구성하는 능력, 깔끔한 완성도 등이 끝까지 논의를 하게 했지만 거의 비슷한 길이의 대사들이 갖는 단조로움, 주제를 다루는 의식의 평면성이 흠이 되었다. '해로가' (김종광)는 구성이 산만하다는 흠은 있으나 사물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시각의 자유로움, 온갖 중독증에 걸린 현실의 한 부분을 무대 위에 드러내는 전개의 신선함 등이 시선을 끌었다. 신춘문예의 목적이 낯익은 방식의 완성도보다는 새로운 의식으로 치열하게 연마된 작가정신을 더 귀하게 여길 거라는 고려에서 '해로가' 를 수상작으로 정했다.

심사를 하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표준어의 무시, 욕설의 일상화, 정서표현의 의도적 천박함 등이 응모작의 거의 절반 이상에서 드러나고 있는 점이었다. 표현의 방법일수도 있겠지만 언어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싶다. 아쉽게 선에서 제외된 작품들을 언젠가 대학로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심사위원 : 정복근.김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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