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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학]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어느 게 우리나라 거지? 얼마전 박수미(13.가산중2년)양은 백화점에서 겨울 점퍼를 고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상표로 알고 있던 '프로스펙스' 에 '메이드 인 차이나' 가 종종 눈에 띄였는데 외국상표로 알려진 '필라' 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 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죠. 왜 이럴까요? '상표주인' 과 '옷 공장' 이 속한 나라가 달라섭니다.

중국이 한국보다 옷 만드는데 돈이 덜 들어가면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은 중국에서 옷을 만들어다 한국에 갖다 팔 겁니다.

프로스펙스는 이런 방법을 택한 거죠. 대신 그 옷에 "프로스펙스 상표를 붙여서 보내달라" 고 주문한 것이고요. 이렇게 주문한 회사의 상표를 붙여서 제품을 만들어 주는 것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이라고 하지요.

필라는 외국에서 잘 알려진 상표지요. 우리 기업은 옷을 만든 다음 필라 상표를 붙여 팔면 더 많이 팔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대신 이탈리아에 있는 필라 본사에 상표값(로열티)으로 옷 값의 일부를 주면 될 테니까요. 이런 과정을 통해 필라는 '메이드 인 코리아' 가 된 것이죠. 외국에서 만든 우리나라 상표, 국내에서 만든 외국 상표. 헷갈리죠□

그러면 '어디 제품인지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쓰고 있을까요? 세계 여러 나라는 혼란을 막기 위해 수입품이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정하는 '원산지' 규정을 만들었어요. 수입품에 세금을 매기거나 어떤 상품은 자기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죠.

우리나라는 제품이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곳을 원산지로 보고 있답니다. 이 경우 프로스펙스의 원산지는 중국이고 필라는 한국이 되겠죠. 이렇게 단순한 경우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프랑스가 디자인을 하고 옷감은 중국이 대고 한국에선 재봉질만 해서 옷을 판다면 이 제품은 어느 나라 제품일까요?

우리나라 규정으로 보면 한국이라고 하겠죠.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제품을 만드는데 조금씩 기여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원산지라고 하기도 어려울 거예요.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은 제품 가격에서 어느 한 나라의 부품 가치가 60%를 넘으면 그 나라 제품으로 보고 있어요. 옷 값이 1백원일 경우 옷감 값이 60원이면 중국제, 재봉질 값이 60원일 땐 한국제가 되는 것이죠. '

예전엔 한국 기업이 한국 땅에서 만든 제품이 대부분이었으니 '국내기업 제품〓국산'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이젠 자유무역으로 많은 나라 사이의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있어서 어느 게 국산이고 외제인지 분간하기가 어렵게 돼 있어요. 또 우리나라 법규상 국산, 외제를 구분하는 기준도 없어요. '

미국 사람들은 일본에 있는 IBM사와 미국의 도요타 자동차회사 가운데 어느 것이 미국 기업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미국의 도요타' 라고 한답니다.

상표의 국적보다는 회사가 그 나라에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어주고, 질 좋은 제품을 제공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렇게 무역이 자유로워지면서 '국산품' 의 의미는 크게 줄어들고 있어요.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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