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또 다른 '여론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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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현 사회부 기자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2일 MBC의 '100분 토론'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이란 주제로 열린 토론에서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과의 논쟁이 발단이었다.

이 교수는 토론 도중 "(정신대가)총독부의 강제 동원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인가"라는 송 의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표현에는 찬성하지만 사실 인식에 있어서는…. (정신대의)한국 처녀.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 업소 주인들"이라고 답했다.

이에 일부 언론은 이 교수의 발언을 발췌, "이 교수가 '정신대가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라는 일본의 우익 측 주장을 대변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보도가 알려지자 서울대 경제학부 홈페이지,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최고 대학의 교수라는 사람이 위안부가 상업적인 매춘부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이 교수의 공개 사과와 교수직 사퇴를 요구했다.

정치권도 거들었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한국사회 지식인들이 가진 역사 인식의 한 단면을 보면서 과거사 규명에 앞장서야 할 당위성을 갖게 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이 교수는 5일 해명서를 내고 "'공창' 운운의 발언을 직접 말한 적이 없다" 고 반박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문제의 발언 중 '찬성'의 뜻은 '강제 동원'됐다는 부분이었고, '자발적으로 정신대에 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고 했다. 또 정신대 문제에 한국인이 개입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우리의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데는 공개된 장소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이 교수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몇몇 언론은 이 교수의 진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일부를 부각한 뒤 자의적으로 재단, 여론을 자극했다. 과거사 규명 논란이 이런 식의 '여론 재판'으로 이어질까 걱정된다.

백일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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