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매복에 걸려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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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 32강전>
○박정환 4단 ●천야오예 9단

제10보(103~109)=결정타(백△)를 던지고도 박정환 4단은 편치 않다. 흘깃 올려다 보는 천야오예의 눈빛도 심상치 않다. 바둑은 의도와 의도의 싸움. 그러므로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지 상대의 의도대로 따라 주면 지는 것. 프로가 그걸 모른다면 바보다. 박정환도 안다. 비록 나이는 16세에 불과하지만 뼛속 깊이 배어 있다. ‘한데 나는 상대의 의도대로 두었다’. 박정환은 스스로에게 되뇌며 불안감에 고개를 젓는다.

천야오예 9단이 느릿하게 103으로 민다. 104는 이 한 수. 손이 본능적으로 멈칫했지만 여기서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라서 그냥 둔다. 그 다음 105가 더욱 느릿하게 떨어졌을 때 박정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했다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너무 쉬운 맥이었다. 이런 기초를 못 보다니 나는 정말 바보다. 박정환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홍시처럼 붉어졌다.

‘참고도 1’ 백1은 흑2로 끊겨 바로 안 된다. 따라서 백은 ‘참고도 2’ 처럼 기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흑2 선수하고 4로 막아 버리면 역시 안 된다. 참 쉽다. 나는 바보다. 미쳤다. 초읽기에 몰린 박정환은 106, 108로 시간을 연장하며 수를 찾아 헤맨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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