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공장장들 돌아왔다, 울산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울산 돌아온 공장장들의 모임 회원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준락(전 태영화학 공장장)·전봉길(삼양사)·이재원(SK에너지)·허의웅(태광산업)·박종훈(SK에너지)·하석일(코리아PTG)·이영근(SK에너지)·이흥창(고합)·심상빈(케미라케미칼)·배도원(한국포리올)·이진종(대한유화)·박종인(금호석유화학)·박세훈(삼성BP화학)·김재현(대한유화)·전표명(모임 실무자)·이중희(삼성석유화학)·김청래(이수화학)·진두환(한국바스프)·박경구(카프로)·지해석(후성)·이상윤(모임 실무자)·신갑식(풍산금속)·정활(SK에너지)·조성웅(LG화학)·문우균(동부하이텍). [돌공모 제공]

“나를 알아주고 평생 쌓은 지식·경험을 활용할 길도 터주고…. 젊음을 바쳐 일했던 울산이 고향보다 포근하게 느껴지더군요.”

은퇴로 울산을 떠났던 공장장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단순히 노후를 함께 보낼 친구를 찾아서가 아니다. 축적된 지식과 현장경험을 살려 후진을 양성하는 대학교수로, 지역경제 살리기에 힘을 보태는 상담원으로 뛰기 위해서다.

2005년 무렵부터 하나 둘 숫자를 늘려가더니 올 들어 ‘돌공모’(돌아온 공장장들의 모임)라는 모임까지 결성했다. 이들의 활약을 눈여겨보던 울산시도 중구 다운동 테크노파크 안에 ‘전문경력인사 지원센터’라는 사랑방을 만들어줬다. 지역산업 발전에 본격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에도 나섰다. 현재 돌공모 회원은 41명에 이른다.

◆돌아온 공장장= 돌공모 회장인 박종훈(68)씨는 1967년 SK에너지 전신인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해 37년간 근무한 후 2004년 SK에너지 울산공장장(부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퇴직하면 고향(서울)에 갈 것이라고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공언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집도 마련하고 집 가까운 곳의 골프회원권도 샀지요.”

그러나 1년 만에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울산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한가해진 삶에 무기력해진 자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때마침 울산에서는 그의 현장경험이 필요했다. 울산대가 당장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강좌를 맡아줄 전문가 물색에 분주했고, 울산시도 생태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석유화학공단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마치 서부영화의 ‘돌아온 장고’처럼 환영해주더군요.”

박씨는 울산대 초빙교수와 울산시의 RUP(석유화학 미래 로드맵 수립)사업 총괄 위원장을 맡아 제2의 인생을 꽃피우고 있다. 소문이 퍼지면서 40여명의 다른 은퇴 공장장도 돌아오거나 울산에 눌러앉기 시작했다.

울산시는 최근 ‘전문경력인사 지원센터 전문위원’이란 명함을 새겨줘 소속감을 주고, 각종 경제정책의 자문그룹으로 참여할 기회를 줬다.

이들 가운데 박세훈씨(전 삼성BP화학 공장장) 등 38명은 울산대·울산과학대 산학협력 교수로 자리 잡았다. 또 울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 38명, 울산 테크노파크에 30명, 울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기술지원단에 38명, 생태산업단지 조성사업에 5명이 각각 참여해 20~30년 쌓은 지혜와 아이디어를 전수하고 있다.

이기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