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도전 현장-유럽] 11. 英 'e-비즈니스'로 제2산업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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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국 국회의사당 건너편 사우스뱅크엔 밀레니엄 축하용으로 높이 1백37m의 밀레니엄 휠이 설치돼 있다.

런던의 동남부 그리니치엔 밀레니엄 돔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새 천년을 향한 영국의 야심을 읽는다면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템스강변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영국을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의 분관으로 현재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장 굉음속에 제2의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영국의 다부진 야망이 묻어난다.

영국정부의 밀레니엄 사업 가운데 하나인 테이트 모던 프로젝트는 폐쇄된 채 방치돼 있던 강변 화력발전소를 초현대식 21세기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이다.

국민복권사업 등을 통해 조성한 1억3천만파운드의 예산이 투입된다.

내년 5월 개관되면 철과 석탄을 재료로 했던 산업혁명의 흉물스런 유산은 지식과 문화가 재료가 되는 제2 산업혁명의 산뜻한 상징으로 바뀌게 된다.

테이트 갤러리의 수석 큐레이터 사이먼 윌슨(57)은 "경제의 원동력이 산업에너지에서 문화에너지로 넘어가고 있다" 는 말로 테이트 모던의 개관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붉은 벽돌 건물과 시커먼 연기를 쏟아내는 공장굴뚝, '세계의 창고' 로 이어지는 템스강변의 수많은 공장과 선박에서 과거 영국인들은 산업혁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 천년을 앞둔 지금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혁명은 보이지 않는 혁명이다.

제1차 산업혁명을 주도,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을 건설했던 영국이 침체와 쇠락의 20세기를 딛고 인터넷과 콘텐츠, 네트워크가 중심이 된 제2의 산업혁명으로 새 천년의 화려한 부활을 노리고 있다.

런던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교외의 작은 마을 헤멜 헴스테드에 위치한 프리서브 본사는 숱한 혁명의 현장 중 하나. 영국 최초의 무료 인터넷 접속서비스 제공업체(ISP)로 지난해 9월 문을 연 프리서브는 1년만에 등록 가입자수가 1백50만명을 돌파, 영국 최대의 ISP로 부상했다.

지난 7월 런던증시에 상장된 이후 프리서브 주가는 현기증 나는 고공행진을 거듭, 석달만에 2백50%의 주가상승을 기록했다.

25명의 웹디자이너를 포함, 직원수가 1백명에 불과하지만 프리서브의 자산가치 평가액은 영국 최대 항공사인 브리티시 에어웨이스나 자동차회사 롤스로이스보다 각각 10억파운드(약 2조원)와 20억파운드가 많다.

영국 최대의 전자제품 유통체인 딕슨을 설득, 무료 접속서비스라는 '대모험' 을 시작한 프리서브의 젊은 사장 존 플루더로(35)는 주식공개와 함께 1백만파운드어치의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받아 벼락부자가 됐다.

홍보담당 이사 데비 미치는 프리서브의 성공요인을 무료 서비스와 영국적 콘텐츠의 두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독창적 콘텐츠 개발을 통해 영국 소비자의 기호와 시장의 수요에 맞는 포털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무엇보다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유망 중소기업의 웹사이트 제작을 지원함으로써 전자상거래(EC) 기반을 확대하는 사업에 현재 역점을 두고 있다" 면서 "이미 프리서브 전체수입의 절반 이상이 전자상거래의 커미션에서 나오고 있다" 고 소개했다.

이는 2002년말까지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토니 블레어 정부의 야심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지난 7월 블레어 총리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여성 하원의원 패트리셔 휴위트를 전자상거래

장관에 임명했다.

세계 최초의 'e-장관' 이 된 휴위트 장관은 "영국은 세계를 제1차 산업혁명으로 이끌었다" 고 상기시키면서 "우리는 글로벌 지식기반경제를 창출해내는 제2의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고 말한다.

전화와 이동통신 분야에서 구축해 놓은 독보적 경쟁력과 콘텐츠.소프트웨어.방송.음반.출판 등 정보.문화산업 분야에서 갖추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21세기 지식기반 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담당을 겸하고 있는 휴위트 장관은 2002년까지 1백50만개 중소기업을 전자상거래로 끌어들이는 것을 1차 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에 구축된 1백개소의 '인포메이션 소사이어티 이니셔티브' (ISI)망을 통해 각 중소기업의 정보화 요구에 맞는 맞춤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비즈니스에 각종 정보화 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중소기업들은 ISI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이미 앞서나간 기업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도 있다.

인터넷.화상회의.전자우편.CD롬 등 도입을 원하는 정보기술 종류와 함께 업종, 정보기술 적용분야, 사업영역을 차례로 선택하면 그에 맞는 선진기업들의 사례가 튀어나온다.

영국정부는 지난해 4월 영국을 지식기반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보화 시대의 정책비전' 을 유럽국 가운데 처음으로 발표했다.

교육과 접속확대.경쟁촉진 등 다섯가지를 줄기로 한 영국정부의 비전은 최근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이 발표한 범유럽 차원의 정보화 플랜인 'e-유럽 프로젝트' 에 거의 그대로 반영돼 있다.

"제2의 산업혁명의 주역은 정보.통신기술(ICT)분야의 벤처기업가들이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돈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고 케임브리지 실리콘 라디오사의 30대 사장인 필립 오도노반은 말한다. 반도체를 이용한 새로운 무선통신기술로 사업에 뛰어든 그는 지난해 10월 벤처 자본가들과 접촉을 시작한 지 두달 만에 물주를 골라야 할 지경이 됐다.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 기업가들과 투자기회를 노리는 자본가들을 연결시켜주는 퍼스트 튜즈데이 클럽의 공동창설자 존 브라우닝은 지식기반 경제에서 영국의 가능성에 주목한 미국자본들의 유입이 줄을 잇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영국의 벤처기업에 투자된 89억파운드 가운데 51억파운드가 미국에서 건너온 자본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미래는 우리의 가장 귀중한 자산인 지식.기술.창의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는 것이 '지식기반경제 백서' (98년 12월)서문에서 밝힌 블레어 총리의 새 천년에 대한 비전이다.

런던=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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