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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헌재(憲裁)는 왜 혼란을 만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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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헌재는 1987년 완성된 민주화 체제의 산물이다. 20여 년 동안 헌재는 770여 건에서 위헌이나 권리 침해를 인정했다. 논란의 결정도 있지만 헌재는 대체적으로 헌법과 인권을 수호해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헌재가 국가를 방황에서 건져낸 대표적인 경우가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다. 2004년 10월 헌재는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건 ‘관습헌법’이므로 수도를 옮기려면 개헌 절차(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결정했다. 장삼이사(張三李四)는 생각하지 못한 명쾌한 논리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항상 명쾌한 건 아니었다. 1년 후 헌재는 7대2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는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과 외교·안보부처 그리고 국회·대법원은 서울에 있으므로 세종시가 건설되더라도 ‘수도 분할’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수도 분할이 아니므로 개헌이 필요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9인 중 권성·김효종 2인은 세종시를 수도 분할로 보았다. 국무총리와 12부4처(당시)가 이전하므로 세종시가 또 하나의 수도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2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수도의 중심 기능은 입법이나 사법이 아니라 행정이다. 헌법은 “국무총리는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 국무총리에다가 17개 부(部)중 12개나 옮겨가는데 어떻게 수도 분할이 아니란 말인가. 헌재가 세종시를 위헌이라고 결정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국가적 혼란과 고뇌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법원 판결처럼 헌재 결정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결정은 존중된다. 제도적으로 사회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굴러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헌재가 비판의 성역으로 남아야 되는 건 아니다. 헌재는 기본적으로 존재 상황이 정치적이다. 9인을 뽑는 사람은 대통령·대법원장·여야 정당이다. 대법원장도 대통령의 선택이니 결국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포함해 헌법재판관들의 성향은 사실상 대통령과 정권의 성향에 많이 좌우된다. 현재의 9인은 모두 노무현 정권 때 재판관이 되었다. 헌재는 구성도 정치적이고 다루는 안건도 정치적 사안이 많다. 정치성은 헌재의 숙명이므로 헌재가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한국에서 헌재는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다.

정치적인 현명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미디어법 결정은 아쉬운 점이 많다. 방송법 표결 때 재적 과반수가 되지 않아 재투표한 것을 헌재는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위반으로 봤다. 5대4였다. 일사부재의는 국회법 규정(92조)이므로 국회는 버젓이 국회법을 어긴 꼴이 됐다. 사실 국회법은 일종의 절차법이어서 처벌 규정도 없다. 그리고 예산안 통과시한 등 국회가 국회법을 어긴 게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일사부재의’만큼은 어긴 적이 드물어 헌재 결정을 보는 국민은 적잖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9인 중 4인은 일사부재의 위반이 아니라고 보았다. 재적 과반수가 안 되면 투표를 다시 하면 되는 것이지 이를 부결된 걸로 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해석이 옳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회의장은 표결할 때 재적 과반수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그냥 표결하진 않는다. 그리고 2002년 11월 국회는 의결했다가 재적 과반수 미달로 드러난 40여 개 법안을 재의결한 적도 있다. 만약 재판관 5인 중 한 명이라도 이런 해석에 합류했다면 ‘일사부재의’ 혼란은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헌법재판소는 법리적 소신이라는 ‘재판관의 울타리’에 갇혀 자꾸 새로운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가는 길을 묻는데 헌재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 것이다. 헌재의 정체성에 대해 헌법소원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