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제2의 삼성전자’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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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한발 빨리 탈출한 이유로 대개 3가지가 꼽힌다. 정부의 과감한 재정확대와 환율효과, 상대적으로 탄탄했던 경제 펀더멘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기업들은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흑자를 일궈낸 주역이다. 앞으로 기업들은 더 중요해진다. 경제위기 때 정부가 구원투수 역할을 하지만 경제를 정상적인 성장궤도로 올라서게 하는 것은 민간부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은 더 없이 반갑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의 소비재판매액지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고루 늘어났다. 설비투자도 전월 대비 18.8%, 전년 동월 대비로 5.8% 늘어났다. 21개월 만에 소비·생산·투자가 동시에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설비투자가 국내로 U턴하는 조짐을 보인 것도 반가운 대목이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설비투자를 늘리는 중소기업의 비중이 16%까지 늘어난 반면 해외투자 건수는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 역시 활기를 띠고 있다. 넥센타이어는 1조원을 들여 국내 공장을 짓기로 했고, LG는 LCD 생산시설을 늘리기 위해 파주지역에 3조27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움직임이다. 삼성전자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2020 비전’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매출액 4000억 달러를 돌파해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압도적 1위,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올라서겠다는 것이다. 내년 투자 규모도 8조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매출액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돌파가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치킨게임’에서도 승리했다. 그러나 앞으로 더욱 과감한 투자로 기술 격차를 벌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삼성의 실적과 이건희 전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국내보다 해외의 반응이 더 뜨겁다. 일본의 유력지들은 지난주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3260억 엔)이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9개 주요 업체가 올린 영업이익(1519억 엔)보다 갑절이나 많다”고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일본의 월급쟁이 사장들이 경기 침체 때 몸을 사린 반면 삼성전자는 이 전 회장의 결단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 업체들을 압도했다고 분석했다. 승패를 가른 분수령은 기술력이 아니라 창조적 리더십이었다고 지목했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살려면 ‘제2의 삼성전자’가 자꾸 나와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삼성의 이병철 선대 회장은 고희(古稀)를 넘어 반도체 생산이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마누라 빼고는 다 바꿔보자”는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혁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전자는 불가능했다. 이런 혁신과 도전정신을 되살리려면 국가 차원의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창조와 파괴를 향한 길을 터줘야 일류 기업이 성장한다. 국내 설비투자를 위해서도 규제완화는 필요하다. 내수 확충과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데도 설비투자만 한 보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