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5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그 모습은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 저편, 또는 가랑비 내리는 날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다가 아는 사람에게서 느끼던 그 흐릿한 낯익음이었다. 그이는 어머니였다. 모직의 한복 위에 카디간 스웨터를 걸친 차림이었다. 나는 잠깐 멈추었다가 빠른 걸음이 되었다. 어머니가 상가 앞에서 마주 뛰어 나왔다. 영화에서처럼 극적으로 부둥켜 안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서며 어깨를 한팔로 감고 말했다.

- 집에 가자!

나는 상가 앞을 지나쳐서 그대로 어머니와 함께 한길로 내려갔다.

- 널 찾느라구 경상남도 땅을 보름이나 헤맸단다. 너 이젠 나하구 집으로 갈거지?

나는 그제서야 눈물 범벅이 되어버리며 대답했다.

- 예, 집으로 가요.

버스를 타러 한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누군가 우리의 뒤를 줄곧 따라오는 것 같았다. 돌아보니 뜻밖에도 장춘사의 웅이가 어머니와 동행이었던 것이다.

- 니가 여긴 웬일이냐?

내가 물었더니 웅이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 저 학생이 없었으면 널 찾을 엄두도 못냈을 거다.

큰형님의 친구가 와서 부산에서 나를 만났다는 얘기를 하면서 진주 근방에 있다더라는 말을 전했을 때, 어머니는 대번에 진주에서 보냈던 내 엽서를 떠올렸다. 내가 주소를 자세히 쓰지는 않고 번지만을 적었지만 어머니는 중앙제빵 집을 용케 찾아냈다. 역시 사장 아주머니는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내가 떠난 뒤에 남편으로부터 황군이 출가하겠다던 말을 전해 듣고 그 모친을 생각하여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제중당 한의원 아들 얘기를 해주면서 자기가 직접 가서 웅이가 있다는 함안의 절 이름을 알아왔다. 어머니는 장춘사로 웅이를 찾아갔다. 역시 내가 부산 동래의 범어사로 갔다는 말을 들었고 그애를 데리고 나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 웅이를 시켜서 절에 가서 알아보게 했더니 스님들은 서로 모른 체 하면서 어느 절에 있는지 가르쳐 주지를 않았다고 한다. 스님이 되겠다며 찾아와 잠깐 머문 적은 있지만 지금 어느 절로 누구를 따라갔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웅이와 어머니는 부산 인근의 절을 뒤지며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스님에게서 '행자가 되어 있다면 아마도 범어사 부근에 있을 것'이라는 귀띔을 받았다. 어머니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서 다시 범어사로 찾아가 접견실에서 눈물 바람을 하며 아들의 행방을 물었다. 드디어 광덕 스님이 나타났다.

- 이미 부처님 자식이 되려고 들어온 사람을 왜 찾으십니까?

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보이며 하소한다. 나는 남편을 일찍 보낸 홀어미인데 그것이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다, 그리고 나는 부모 때부터 기독교인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가르침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세상사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같을 것이다, 더구나 내 자식은 가출했고 한번도 어미의 의사를 물은 적도 없다고 누누히 얘기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