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초등학교 인질극 사태] 갓난아기와 여성 먼저 풀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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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북오세티야 자치공화국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무장괴한들이 2일 오후(현지시간) 일부 인질을 풀어줌으로써 사태 해결 전망을 밝게 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인질이 남아 있어 강제진압이 이뤄지면 대규모 유혈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인질 일부 석방=먼저 갓난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여성 세 명이 풀려났다. 로이터통신은 "루슬란 아우셰프 전 잉구슈 대통령이 미니 버스를 몰고 학교 건물로 접근해 인질들을 태우고 나왔다"고 전했다. 곧이어 다른 인질들이 석방됐다. 풀려난 인질들 중 갓난아이를 데리고 있는 한 여성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대부분은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무장 인질범들은 사건 첫날인 1일에도 학교를 점거한 직후 15명의 학생을 석방한 바 있다.

무장괴한들이 인질들을 풀어준 것은 당국이 무력 진압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다 갓난아이들의 건강 악화로 추가 사망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2002년 체첸 반군에 의한 모스크바 오페라극장 인질극 당시엔 강력 대응 의사를 밝혔다.

인질 일부가 석방되기 전 학교 건물에는 어린이 123명을 포함, 모두 354명이 붙잡혀 있었던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보안 당국이 인질들의 친인척들을 밤새 조사한 결과다.

무장괴한들은 자신들과 인질들을 위해 음식과 물.의약품 등을 제공하겠다는 당국의 제안을 계속 거부했다. 음식에 신경안정제 등의 약물이 들어 있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모스크바에서 급히 사건 현장으로 날아온 러시아의 저명 소아과 의사 레오니드 로샬은 2일 새벽 3시까지 전화를 통해 테러범들과 협상을 계속했으나 큰 성과없이 끝났다.

로샬 박사는 "인질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테러범들에겐 인근 잉구슈나 체첸 공화국으로 안전하게 도망칠 길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어린이 인질들을 어른으로 맞바꾸자는 제안도 거절당했다. 인질범들은 북오세티야.잉구슈 공화국 대통령과 함께 로샬 박사를 협상 파트너로 지명했었다.

◆ 무력 진압 검토 안 해=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북오세티야 지부장 발레리 안드레예프는 2일 "인질범 무력 진압 계획은 검토되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강도 높은 협상을 계속할 것이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날 인질극 발생 이후 처음 발표한 성명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건 인질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 모든 구조 활동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2~3일로 예정된 터키 방문을 연기했다.

러시아 측의 요청으로 2일 새벽 긴급 소집된 유엔 안보리는 성명을 통해 "인질들을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풀어 줄 것"을 요구했다.

◆ 인질범들 누구인가=스스로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이들이 체첸 반군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테러 조직 '리야두스-살리히인 이슬람 순교자여단' 소속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인질범 중 한 명이 1일 자사 현지 특파원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단체의 대변인이라고 소개한 뒤 이같이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바사예프는 이번 테러 개입 여부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앞서 인질범들은 샤밀 바사예프의 테러 조직과 긴밀히 연계된 별도의 테러 단체 '잉구슈 자마아트' 소속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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