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의원 이념 분포로 본 정국 기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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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7대 첫 정기국회가 개원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인 듯하다. 과연 17대 국회에서 여야는 어떤 모습을 보이며 정국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며칠 전 보도된 한국정치학회.중앙일보의 17대 국회의원 이념 성향 조사 결과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각 정당 이념적 동질성 강해져

이번 조사는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던 이전의 많은 조사와 달리 16대 의원들에게 질문했던 설문과 동일한 항목으로 다시 조사했기 때문에 그 사이 우리 정치의 변화 추세를 가늠케 해준다. 또한 이러한 의원 이념 성향 조사는 단순히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향후 정국의 전개 방향과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16대 의원 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때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대선 예비주자로 이 조사에 참여했는데 당시 노 대통령의 이념 성향은 0(진보)~10(보수)의 정책좌표 가운데 1.5로 조사 대상자 가운데서도 대단히 강한 진보성을 나타냈다. 현재 노 대통령이 타협을 거부하며 추진하는 여러 가지 개혁정책과 관련해 볼 때 이러한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의원 이념 성향 조사에서도 몇 가지 흥미로운 특성이 발견된다. 우선 진보성향을 갖는 의원들의 비율은 16대 국회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보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당별 이념적 특성은 대체로 별 차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 좌표 상에서 한나라당은 5.3에서 5.4로, 16대 조사에서 3.7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17대에서는 열린우리당 3.5, 민주당 3.9로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17대 총선에서 정치판에 물갈이가 이뤄졌고 그 결과 초선 의원의 비율이 60%를 넘게 된 상황임에도 각 당의 이념 성향에 별다른 변화가 생겨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당정치가 이제 유사한 이념적.정책적 성향을 갖는 이들의 정치집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한편 16대 조사에서는 여야 간 시각 차이가 대북관계 등 정치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번 조사에서는 정치 분야의 입장 차이는 다소 줄어든 반면 경제.사회 분야에서의 차별성은 이전에 비해 강화됐다. 과거 여야 간 쟁점이 대북.대미관계 등 정치적 이슈에 치우쳐 있었다면 17대 국회에서는 경제.사회 등 실생활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경쟁과 대립도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같은 정당 소속 의원들의 이념적 동질성에 관한 것이다. 당내 의원의 이념적 동질성은 민주노동당이 역시 가장 강했다. 한나라당은 16대에는 의원들 간에 비교적 큰 이념적 차이를 보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그 차이가 줄어들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16대의 민주당 시절에 비해 소속 의원 간 이념 차이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념적 괴리는 결국 일부 의원들의 탈당으로 귀결됐다. 마찬가지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이념적 시각차가 크다는 사실은, 이미 간간이 드러나고 있지만, 향후 정책노선 및 정국운영을 둘러싼 당 내의 갈등이 만만치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열린우리, 당내 노선갈등 시사

이처럼 국회의원 이념 조사는 국민에게 의원들의 정책적 소신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향후 정국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할 점은 대다수 의원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16대 국회에 비해서는 응답을 거부한 의원의 수가 다소 많았다는 점이다. 응답을 거부한 이들 가운데는 특히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유독 많았다. 자신의 정책적 입장과 소신을 국민 앞에 밝히고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받겠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보이지 못한 일부 의원들의 편협함이 아쉬웠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 한국정치학회 연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