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소설] 8. 소설-이현수 '신 기생뎐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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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군산의 부용각. 전국에 열 집 남짓한 전통 기방의 명맥을 잇고 있는 기생집이다. 한 때 명창들에게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소리기생이었던 오 마담은 지금 좌불안석이다. 내일 밤 춤기생 미스 민이 머리를 얹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키 훤칠한 현대판 미인이었던 오 마담에게는 아리잠직한 토종미인이었던 기생 동무 채련이 있었다. 채련은 예기(藝妓)가 아니라 예인(藝人)으로 나서도 될 정도로 살풀이 춤사위가 뛰어났다. 하지만 자신에게 눈독 들이던 선주에게 머리를 얹는 것이 결정된 날 목포 앞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춤사위의 흥을 돋우는 단소잽이와 정분이 나 있었던 것이다. 채련의 죽음 이후 오 마담은 몸보시, 살보시라도 하려는 듯 연애전문가로 나선다. 하지만 어느덧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 이제 오 마담에게는 사랑도 소리도 모두 부질없다.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다.

<'작가세계' 2003년 겨울호 발표>

◆ 이현수 약력
-59년 충북 영동 출생
-97년 '문학동네'로 등단
-장편소설 '길갓집 여자', 소설집 '토란'
-2003년 무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신 기생뎐 2-오 마담 편'

1997년 늦깎이 등단을 해 '신인급'이지 소설가 이현수씨는 40대 중반이다.

'젊은 세대처럼 소설에 대해 좀더 가벼워진다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은 평생을 걸고 도전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마음이다.

이씨는 "지난번 소설집 '토란'도 그랬지만 연작 소설의 제목 '신 기생뎐'도 평범하지 않으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제목이 너무 소박하지 않으냐는 염려인 듯했다. 그는 "저녁 무렵 아파트 단지를 빠른 걸음으로 산책하다가 과거 기방에서 부엌 어멈을 했다는 할머니의 무용담을 들은 게 연작 소설을 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부엌 어멈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에게 하는 말을 불과 10분가량 엿들은 것에 불과했지만 '소설감'을 잡아낸 것이다.

이씨는 "과거 기방의 실상을 전하는 자료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반대였다"고 말했다. 예전에 이름난 기생이었던 할머니들이 운영한다는 음식점 등을 수소문해 몇차례 찾아갔지만 갈 때마다 이사를 떠나거나 한 뒤여서 소득 없는 술래잡기가 되곤 했다.

이 때문에 '신 기생뎐' 연작에 등장하는 기방의 모습들은 대부분 이씨의 상상에 의한 것이다. 이씨는 "예전 기방은 비록 천민이었지만 여자들이 주도권을 행사했던 대단히 독특한 구조였다. 그 안에서 일종의 여성 공동체 문화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런 기방의 재현을 통해 이씨는 한 문화가 어떻게 생성돼 발아하고 소멸하는지를 따뜻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신 기생뎐' 연작은 '실천문학' 가을호에 4편까지 발표된 상태다. 이씨는 7편이 모이면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단행본 '신 기생뎐'은 군산의 기생집 부용각을 무대로 동일한 등장인물들이 매 편 다른 에피소드를 이어나가는 연작 장편 소설이 된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속도전의 시대에 고전적 주제와 소재에 천착한 데서 작가정신의 가능성을 점치게 된다. 무지막지한 시간을 투입해 작은 소출을 거두고자 한 공들인 문체도 탄복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하씨는 "이런 작품은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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