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2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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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 쇼팽 피아노협주곡 제1번 e단조, 제2번 f단조, 지휘.피아노 크리스티안 짐머만, 폴란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DG)

피아니스트들의 꿈은 협주곡에서 자신이 지휘도 하고 독주도 하는 것이다. 지휘자와의 음악적 의견 충돌 없이 음악을 이끌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 대니얼 바렌보임도 모차르트 협주곡이나 베토벤의 '3중 협주곡' 레코딩이나 연주 때 건반 앞에서 지휘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모차르트나 베토벤 시대에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작곡자가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를 겸했다. 지휘자라는 제3의 인물이 이끌어가는 음악적 구심력 없이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의 '2중주' 로 음악을 이끌어간 셈이다.

폴란드 태생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43)도 쇼팽 서거 1백50주기 기념으로 21년만에 새로 녹음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전곡 앨범에서도 그 소박한 꿈을 이뤘다.

쇼팽 서거 1백50주기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공연과 행사.레코딩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짐머만이 내놓은 쇼팽 협주곡 음반은 자신이 직접 창단한 폴란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오랜 리허설과 30여회의 순회공연 끝에 이탈리아 투리노 조반니 아넬리 극장에서 녹음으로 완성한 것이어서 유난히 눈길을 끈다.

지난 75년 바르샤바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한 후 78년 키릴 콘드라신 지휘의 암스텔담 콘세르트헤보, 줄리니 지휘의 LA필하모닉과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녹음한 쇼팽 협주곡집과 비교할 때 외면적 기교보다 내면적 깊이에 충실한 녹음이다.

75년 레코딩은 DG레이블이 올해초 선보인 '쇼팽 에디션' 에 수록돼 있다.

짐머만이 25~35세의 폴란드 연주자 3백50명의 지원자 중 선발한 50명의 연주자와 쇼팽 협주곡 전집을 다시 녹음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지난 96년 40회 생일날.

새로운 지휘자.오케스트라와 만나 연주하고 녹음하는데 따른 중압감을 덜기 위해서 직접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 연습 도중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을 만큼 음악에 헌신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가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배려한 전략이다.

이 음반에서는 음표 하나 하나에 짐머만의 섬세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긴밀한 호흡과 유려한 프레이징이 감칠 맛을 낸다.

이번 음반 레코딩을 위해 특별히 창단된 오케스트라인 만큼 오랜 리허설을 통해 다져온 '함께 음악 만들기' 의 노하우가 앨범 전체에 반영되고 있다.

짐머만은 정식으로 지휘를 공부한 적이 없지만 지휘자 없이 연주.녹음해본 경험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 칼 뵘이 지휘하는 베를린필과 협연하기로 되어 있던 짐머만은 뵘이 세상을 떠난지 1주일 후 지휘자 없이 협주곡을 연주했다.

또 번스타인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녹음하던 도중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나자 제1번과 제2번을 지휘자 없이 녹음한 경험도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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