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진 국가기강 충격…김대통령, 박비서관 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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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청와대 박주선(朴柱宣)비서관이 옷 로비 사건과 관련, 사직동팀이 작성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한 최종보고서인 '검찰총장 부인 관련 비위첩보 내사결과' 를 김태정(金泰政) 전 검찰총장에게 유출한 사실이 26일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더구나 이 최종보고서는 金전총장에 의해 신동아 그룹의 로비스트였던 박시언(朴時彦.62)씨에게도 전달됐으며 朴씨를 통해 사건 당사자였던 이형자(李馨子)씨측에도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통령 보고서가 관련 당사자들에게 유출됐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국가기관의 기강해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보고서는 특히 결론에서 "검찰총장 부인은 밍크코트를 구입하거나 李씨에게 대금지불을 요청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됐다" 며 사건을 李씨가 허위사실 유포, 金전총장을 낙마시켜 남편 최순영(崔淳永) 신동아회장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한 자작극으로 결론짓는 등 특검팀의 조사내용과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金전총장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의 반코트 외상구입 내용을 담은 사직동팀 최초보고서 추정 문건 내용과 달리 검찰수사 결과처럼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鄭日順)씨가 반코트를 포장해 몰래 보냈고 延씨는 옷이 배달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곧바로 반환했다" 고 돼 있어 사직동팀의 내사와 검찰의 수사가 축소조작됐다는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따라 朴비서관이 보고서 내용을 金대통령에게 허위보고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사법처리 논란 등 적지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朴비서관은 "신동아그룹 崔회장이 구속(2월 11일)된 뒤 올 2월 20일께 金전총장이 '아내와 관련된 소문의 진상을 알고 싶다' 고 요구해 보고서 1부를 보내줬다" 고 시인하고 "대통령에게 사전.사후에 이 사실을 보고하진 않았다" 고 말했다.

朴비서관은 그러나 "사직동팀 최초보고서라는 문건은 사직동팀으로부터 작성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전달한 사실도 없다" 며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朴비서관이 전달한 청와대 최종보고서는 모두 A4용지 4쪽 분량으로 내사경위.첩보요지.첩보취득 경위.내사결과.관계자들 행적.의견 등 여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金전총장측의 변호인인 임운희(林雲姬)변호사는 "金전총장이 부인 延씨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평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문건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고 말해 이 문건이 朴씨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됐음을 암시했다.

박시언씨는 본사와 전화통화를 통해 "金전총장으로부터 문건을 직접 건네받았다" 고 확인하고 "현재 지방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으며 30일 특검측에 출두해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 고 말했다.

목포고 출신인 朴씨는 98년 6월 신동아그룹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정치권 일각에선 朴씨가 여권 실세 핵심부를 상대로 신동아 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의 구명(救命)을 위한 로비를 펼쳤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형자씨측은 "박시언씨를 통해 올 3월께 사직동팀의 최종 문건을 봤으며, 우리쪽의 자작극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있어 金전총장이 이 문건을 읽고 나서 격분해 崔회장을 구속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이연홍.김종혁.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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