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씨 부부 출두표정] 前총장 눈물흘리자 검찰 '치욕의 날' 침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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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4일 오후 2시45분쯤.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 부부가 서로 손을 꼭 잡고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金전총장은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와 임운희(林雲熙)변호사가 자리를 잡자 "어제 우리 부부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 고 운을 뗐다.

이 순간부터 부인 延씨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金전총장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잠깐 침묵한 뒤 곧바로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내렸다. 낭독 후 문건입수 경위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金전총장은 미리 준비한 듯 당시 상황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金전총장은 "경찰(사직동팀)이 처를 조사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불평을 토로하면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고 오해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고 말하면서 답답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말미에 옷 구입경위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자 침묵을 지키던 延씨는 "제가 말할게요" 라며 직접 나섰다. 延씨가 울음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잇자 金전총장도 마침내 참아온 눈물을 흘렸다.

金전총장 부부는 "부부가 희생되더라도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돼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는 말을 남기고 조사실로 향했다.

한편 金전총장 부부의 출두 모습을 TV로 지켜본 검사들은 계속되는 검찰의 위상 추락을 걱정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느냐" 며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고 말했다. 그는 "金전총장이 처음부터 용서를 구했다면 사태가 이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을 부르는 악순환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고 지적했다.

대검의 한 부장검사는 "전직 검찰총장이 울먹이며 '사죄의 말씀' 을 읽어 내려간 오늘도 또다른 검치일(檢恥日)로 기록될 것" 이라며 "잇따른 악재(惡材) 가운데 金전총장이 있는 만큼 '올해의 인물' 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또 다른 검사는 "옷 로비 의혹사건이 검찰에 부담인 만큼 金전총장이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아 검찰이 더이상 난도질당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4명의 여인이 모두 거짓말을 하는데도 연정희씨는 잘못이 실제보다 크게 부각돼 '비례의 원칙' 이 무너진 느낌" 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서울지검 3차장검사로 수사를 지휘했던 김규섭(金圭燮)대검 공판송무부장은 "검찰은 법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수사과정에서 원칙을 어기거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고 강조했다.

김상우.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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