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합법화 의미·전망] 조직확대 발판 강성이미지가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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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혹독한 눈보라 속을 속옷만 입고 달려야 했던 시대를 이겨내고 따뜻한 외투를 입게 됐다' 민주노총(위원장 段炳浩)이 합법화된 23일 낸 성명서의 일부다.

87년 '대투쟁' 을 실질적으로 이끈 뒤 95년 11월 창립된 민주노총은 그동안 '법외 단체' 라는 이유로 각종 불이익 감수 등 서러움을 당해왔다.

특히 정부.사용자측으로부터 각종 정책 입안과정 등에서 '합법 한국노총-불법 민주노총' 이라는 등식으로 따돌림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이번 합법화 조치는 그동안 실질적으로 활동해온 조직에 대한 양성화란 '단순한' 의미를 뛰어넘어 기존 노사문화의 틀이 변화됐다는 의의를 갖는다.

61년 8월 한국노총이 유일의 합법조직으로 출범한 이후 37년 만에 제2의 노총이 합법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에 대한 화해' 로 풀이된다.

이제 민주노총은 각종 노동정책은 물론 고용보험.국민연금.여성정책 등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조직 확대의 발판 마련은 물론 정부로부터 예산지원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노동현장에 큰 변혁이 예상된다.'뭐니뭐니 해도 '가장 신경이 쓰일 곳은 한국노총. 현재 한국노총은 조합원 수가 1백15만명으로 60만명의 민주노총에 비해 세력상(□) 우세하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들이 대거 가입해 있는데다 노동 민주화를 주도한 경력을 바탕으로 민주노총이 이를 만회하려 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노.정관계의 변화도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파행 중인 노사정위 복귀와 관련', "재검토할 이유가 없다" 며' 일단 부정적인 태도다.

그러나 段위원장은 "창구를 열어놓고 충분한 대화와 교섭을 벌여나가겠다" 며 유연한 자세다. 합법 단체로서 가져야 하는 책임과 강성 이미지를 조화시키는 것이 민주노총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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