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의 도쿄 24시] 세기말의 '독버섯' 신비주의 의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12일 새벽 나리타(成田)시 M호텔 객실을 덮친 지바(千葉)현 경찰 소속의 형사들은 소스라쳤다. 살인사건 제보를 받고 달려가 보니 침대에 미라 같은 시체가 놓여있었다. 숨진 지 3~4개월은 된 듯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니 손대지 마세요. " 현장에 있던 장남(31)이 막무가내로 수사를 막고 나섰다. 경찰은 할 수 없이 의사를 불러 사망을 확인하고 시체를 옮겨야 했다. 숨진 사람은 종합상사를 정년퇴직한 K씨(66). 지난 6월 뇌출혈로 쓰러져 효고(兵庫)현의 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산소 마스크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는 신세였다. 그런데 장남이 입원 며칠 뒤 아버지를 M호텔로 옮겼다.

물론 아무런 응급장치도 없는 곳이다. 자신과 누나(34)가 회원인 '라이프 스페이스' 라는 단체의 설립자 다카하시 고지(高橋弘二.62)에게 치료를 맡기기 위해서였다. 다카하시는 '머리를 때려 기(氣)를 심는다' 는 치료로 시간당 1백만엔(약 1천만원)을 챙겨온 인물. 스스로를 '교조' 라 부른다.

치료는 7월 3일부터 시작됐다. 장남이 쓴 '관찰일기' 에 따르면 다카하시는 이날 7분 동안 손으로 환자의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1회 '치료' 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환자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고 이곳 언론들은 전했다.

이후 환자의 몸은 점점 거무스레 변해갔지만 다카하시의 '머리 두드리기' 치료는 계속됐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람은 30분 동안 숨이 멎어도 괜찮다" "혼이 들어가 거듭나고 있다" …. 장남은 그런 얘기를 그대로 믿었고,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1백여일을 시체와 함께 지냈다. 호텔측은 장남이 청소원의 출입을 막는 바람에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사건이 불거진 후에도 다카하시의 기행(奇行)은 계속됐다. 기자들과의 3시간30분간에 걸친 회견에서 "환자는 치료중이었다" "나는 피가 하나도 없다" 는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다.

지바현 경찰은 사건 후 60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22일 라이프 스페이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신비주의 치료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단체의 회원은 한때 1만명에 달했다가 지금은 핵심 조직원 1백50여명만 남았다.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95년 옴진리교의 도쿄(東京)지하철 테러 사건의 악몽을 떠올리는 분위기다. 라이프 스페이스가 테러와 연계되지는 않았지만 상식과 담을 쌓은 사교(邪敎)집단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신고(高橋紳吾)도호대 교수(의학부)는 "회원들은 종교적 집단망상을 일으키고 있다" 며 "이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사교의 전형적인 예" 라고 지적했다.

21일엔 발바닥으로 건강상태와 운세를 판단하는 '발바닥 진단' 을 한다고 신도를 모아 거액을 챙겨온 한 종교단체가 적발됐다. 피해자는 1천1백명으로 피해액도 52억엔에 이른다. 세기말의 불안이 일본을 파고드는 것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