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약이다.’
의사 외의 직업은 생각한 적 없어
‘6·25 전쟁’ 때문에 의대를 중퇴했던 아버지의 소원은 장남(이태석)이 자신이 못다한 의사가 돼 병든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의사를 천직으로 생각했고 한 번도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대생이 된 후엔 의료봉사 동아리에 가입해 방학 때마다 빈민가 진료에 동행했다. “학생은 의료 봉사를 가도 선배 의사의 심부름을 하는 게 고작이에요.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 의사가 돼야 할지를 깨닫게 됐습니다.”(이 교수)
소외계층 진료를 다니다 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 많다. “팔 뼈가 부러졌는데도 나무를 부목으로 해 헝겊을 붕대로 활용한 채 한참을 지낸 환자가 있는가 하면 온갖 병이 겹쳐 도대체 무슨 병부터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막막한 느낌을 주는 분도 접하지요.”
그는 봉사활동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자신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겸손해지는 데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점”을 꼽는다.
“말이 봉사지, 일상에서 잊기 쉬운 겸손함과 감사의 마음을 유지시키니 치료 받는 환자보다 진료하는 의료진이 더 많은 걸 얻는 셈이에요.”(이 교수)
전문의가 된 그는 의료봉사 활동 범위를 넓히기 시작해 1992년엔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의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선천성 기형 환자 치료를 돕는 ‘한울회’를 조직했다. 또 이듬해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서울역으로 달려가 노숙자 진료도 시작했다.
이 교수는 한 달에 크고 작은 수술을 100건 정도 할 만큼 외과의사로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그는 성인 탈장 환자를 수술할 때 3차원 그물망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성인 탈장환자 첨단치료법 첫 도입
“2000년대 이후 노인 인구가 늘면서 탈장 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했어요. 복막이 약해지면서 장이 사타구니 부위를 통해 고환으로 빠져 나오면 병 자체를 부끄러워해 병원 오기를 꺼리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이 교수)
치료는 내려온 장을 배 속에 넣어준 뒤 구멍 난 부위를 그물망으로 덮어주는 방법인데 평면형 그물망을 사용할 땐 수술 후 재발률이 5%나 됐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미국 마이애미대에서 최신 탈장 치료법을 배웠고, 귀국 후 구멍 난 부위를 앞뒤로 막아주는 3차원 그물망 치료법을 적용했다. 이후 재발률은 0.5% 이하로 줄었다. 이 교수의 치료를 받은 1000명 이상의 환자 중 재발한 경우는 한 명뿐이다.
의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이 교수는 “무릇 의사란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해야 진짜 의사”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생명이 오락가락 하는 환자가 찾는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 진료과를 기피하고, 미용 시술에 관심이 쏠리는 요즘의 의료 현실이 안타깝다.
“왜곡된 의료 현실을 개선하려면 잘못된 의료 제도도 개선해야 하지만 의대생 시절, 인성 교육 과정도 강화해야 합니다. 또 사회 전반적인 물질만능주의도 바뀌어야 하고요. 그래야 의사와 환자가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좋은 치료 결과도 나옵니다.”
이태석 교수 프로필
▶1957년 서울 출생
▶1983년: 경희대 의대 졸업
▶1983~1988년: 경희대 의대 수련의 및 외과
전공의, 외과전문의 취득
▶1991~1995년: 경희대 의대 전임의
▶1997년: 일본 오사카 시립아동병원 연수
▶1999년~현재: 을지대 의대 외과 교수
▶논문: SCI 논문인 ‘Vascular Surgery’에 실린 ‘고농도 포도당, 만니톨 및 PGE1 투여에 따른 배양내피 세포의 PDGF와 PGE2의 분비
변화에 관한 연구’ 외 77편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신인섭 기자
김희상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혼수 빠진 환자 돌보다 본인이 A형 간염 걸리기까지”
“제가 서울역의 노숙자 무료 봉사를 하게 된 계기도 이 교수 때문이에요.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황만 허락되면 달려갑니다. 그러다 본인이 병 들어 입원한 적도 있어요.” 이 말을 마친 김 교수는 물 한 모금을 마시더니 말을 이어간다.
“7, 8년 전인가요? 한 번은 위중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던 환자가 간성 혼수에 빠져 이 교수가 근무하는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물론 본인이 수술했던 환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진료하고 수술하는 바쁜 시간을 쪼개 밤낮 없이 그 환자를 돌봤어요. 그러다 급기야 본인의 얼굴이 노랗게 변할 정도로 황달이 심해졌습니다. 급성 A형 간염에 걸렸던 거예요. 마침내 이 교수 자신이 입원 환자가 됐는데 그때에도 다른 의료진을 통해 환자 상태를 늘 체크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다행히 그 환자는 상태가 좋아져 퇴원했습니다. 병 들면 정말로 이런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