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타는 모든 분에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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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35면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설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라는 노래 가사가 갑자기 가슴에 와 닿는다면…, 운전을 하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아무 이유 없이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지금 여러분은 가을을 타고 있습니다.

가을은, 타는 사람과 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남보다 앞서 가는 사람이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보통 다른 존재를 추월해 가고 있는 사람은 가을을 타지 않고, 다른 존재의 뒷모습을 보고 사는 사람이 가을을 탑니다.

사전에는 없지만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사추기(思秋期)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춘기(思春期)가 몸이 마음을 앞서 가는 시기라면 사추기는 중년이 돼 몸이 마음보다 뒤처지거나, 마음이 몸을 앞서 가는 시기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사추기이면서 가을을 타는 분이 있습니까? 최악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입니다. 저는 지난 한 달간 가을을 아주 심하게 탔습니다.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 싶어 노력하다가 몇 가지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는 기온의 변화에 따른 생체 리듬의 변화로서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요약하면 ‘가을 우울증’입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는 존재의 속도와 관련 있습니다. 자신의 속도가 주변보다 낮아 ‘다른 존재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긴 상처가 가슴속에 쌓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계절에 나이를 먹을까요? 12월 31일 밤 12시? 달력으로는 그때겠지만 심리적·육체적으로는 가을에 나이를 먹습니다. 왜냐하면 가을에는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나뭇잎도, 뜨거웠던 여름도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청춘도, 세월도, 사람도 떠나갑니다.

대중가요의 가사에는 많은 사람의 정서적 공감대가 있습니다. 최백호씨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40∼50대의 가을 애창곡인 이유는 “나의 ‘뒷모습 상처’를 더 이상 도지게 만들지 마라”라는 주장이 가슴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가을 우울증’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으십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음에 맞는 친구와 가을바람을 맞으며 술을 한잔 하는 것입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길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자주 하다 보면 몸이 망가진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일에 몰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가벼운 ‘가을 우울증’에는 효과가 있지만 심한 ‘가을 우울증’에는 소용없습니다. 몰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기입니다. 사이클링, 수영, 빨리 걷기, 달리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합니다. 숨이 찰 때까지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걷거나 달립니다. 의학적인 면, 심리적인 면 모두에서 ‘가을 우울증’이 치료될 수 있습니다. 먼저 의학적인 면에서 인간의 육체는 고통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자체적으로 마약보다 더 강력한 진통제를 분비합니다. 이 진통제는 육체적 고통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가을 우울증’까지 함께 날려 버립니다. 또 심리적인 면에서, 달린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추월하는 것입니다. 다른 존재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추월하기에 ‘뒷모습 상처’가 치료됩니다.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한계에 도전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많이 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몸이 견디지 못해 뒤탈이 날 수 있습니다.

달리기 하니까 2007년 모 음료회사를 위해 쓴 카피가 생각납니다. (남자 편) “그녀가 갔다. 나는 달린다. 온몸으로 눈물을 흘리고 싶다. 그래야 내 눈에서 눈물이 마를 테니까….”, (여자 편) “혼자가 됐다. 나는 노래한다. 목이 터져라 부르고 싶다. 그래야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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