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남북 정상회담, 북핵 해결 위해서도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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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접촉설이 점점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남측 고위 인사와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만났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부인하진 않고 있다. 비밀접촉에서 회담 의제와 시기, 장소 등에 관해 상호 의사 타진이 있었지만 접점을 못 찾아 결렬됐다는 보도와 함께 추가 접촉 예정설도 나오고 있다. 사안의 성격상 공개하긴 곤란하겠지만 수면 아래서 뭔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를 놓고 국내 여론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리는 듯하다. 하나는 만남을 위한 만남, 이벤트성 만남은 안 되며, 북핵 문제의 확실한 진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만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다. 만남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면 지난 정부 때처럼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반드시 성과가 전제돼야만 남북 정상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시각이다. 북핵 문제에 관한 서로의 의중을 타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 나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두 시각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동안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으로 화해와 협력의 대원칙에 동의해놓고도 북한은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린다면 북핵 문제에서 뭔가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면 설득도 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권할 일이지 피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정상 간의 직접 대화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언제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이 제안한 북핵 문제의 ‘그랜드 바긴’, 즉 일괄타결 구상을 김 위원장에게 직접 설명하고, 이에 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작지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답방 약속 미이행을 문제 삼아 반드시 서울 개최를 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장소 문제가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교차 방문 원칙이 지켜진 옛 동·서독 정상회담의 사례에 비추어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장소 때문에 대화 자체가 무산되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일 수 있다. 평양행이 걸린다면 판문점이나 금강산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북·미 간 양자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핵 문제를 논의한다면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적극적인 대화 공세로 나오는 북한의 의도는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북한의 조급증을 활용할 필요도 있다. 당장의 목표는 북핵 포기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다면 정상회담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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