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66.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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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제13장 희망캐기 ①

승희가 수감생활 중인 변씨를 접견한 것은 그녀가 옌지를 떠난 지 40여일이 지난 뒤였다. 면회실로 들어서는 변씨의 모습을 차단 창 너머로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야릇하게도 색 바랜 수의(囚衣)가 변씨에겐 썩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문득 머리 속을 파고 든 느낌을 그대로 토로한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얼굴을 붉히며 그녀는 변씨와 차단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동안 말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말이 없던 그 사이, 승희는 낡은 수의가 변씨에게 어울려 보였던 까닭을 찾기도 했었다.

그 어울림은 그의 표정이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는 고도(孤島)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깊은 바닷속 모래더미 위에 넙죽하니 배를 깔고 육중한 수압을 대수롭지 않게 견뎌내고 있는 가오리처럼 그는 태연했다.

승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흡사…. 여기에 교도소가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이 곳을 지키며 살았던 이무기 같아요. "

변씨는 지난 날처럼 야단스럽게 웃지 않았다. 빙긋이 웃으며 그는 대꾸했다.

"이무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나 해?"

"바로 내 앞에 넙죽하니 앉아 있네요. "

"용이 되려다가 저주를 받아 승천하지 못하고 연못 속에 갇혀버린 구렁인데, 다시 용이 되려면 천년을 기다려야 하는 억시기 운세 사나운 구렁이야. "

"그럼 바로 맞혔네요. "

"이런 사람하구선. 용은커녕 용꿈 비스름한 것도 꿔 본 적이 없는 사람이란 걸 승희가 잘 알텐데…. 난 연못 위로 기어다니는 각다귀 정도였지. 그래, 어디 갔다가 인제 왔나?"

"내 소식 들으셨어요?"

"달포쯤 되었나? 형식이란 놈이 면회와서 그러대. 아줌마가 한선생 차버리고 중국으로 내빼부렀다고. 그 얘길 듣고 웬 걸 내 예측이 들어맞았다는 생각을 했었지. 역마살이 있는 그 여자가 곁에 꿀단지가 쌓여 있다 한들 언제까지 붙어있을까, 조마조마 했었으니까. "

좀도둑이 들어가면 권총 강도로 돌변하여 출소하는 곳이 교도소라는 항간의 소문이 얼른 뇌리를 스쳤다. 모기과에 불과한 곤충인 각다귀가 용이 되어 출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실소했다.

공연한 말인 줄 알면서 그녀는 물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거예요?"

이번엔 변씨가 실소를 하였다. 그러나 옛날처럼 말꼬리를 잡아채진 않았다.

"듣기에 따라선 미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은 편해져. 하루를 못 견딜 것 같았는데…. 지내보니까 마음 먹기 나름인 것 같어. 나 아주 편해. "

"차마담 생각 안나세요?"

"왜 생각나지. 서로 미련둔 것 없어서 다시 뭘 어쩌겠다는 생각은 멀리 갔지만, 출소하면 만나볼 수도 있어. 내가 사냥꾼 행세했던 것이 잘못이었지. 애초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새끼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아가는 여자를 사냥꾼처럼 쏘아 잡았다고 생각해서, 니 것 내 것 따졌다는 게 이 나이를 먹고도 철없는 짓이었지. 나 그 거 알어. 내가 철없는 짓이었다고 그러니까 감방 후배가 그러데. 그런 걸 두고 철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나. "

"그럼 뭐라고 해야 한데요?"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말해야 한대. 난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더군. "

그런면서 변씨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승희는 자칫 폭소를 터뜨릴 뻔 했었다.

문득 한기를 느끼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변씨가 물었다.

"그 동안 어디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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