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출문건 뒤늦게 회수…체면 구긴 국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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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론탄압 문건' 사태가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의 '국정원 문건반출' 사건으로 확산되고 있다.

야당은 국가기밀 관리의 허술함을 파고 들며 李부총재의 사법처리뿐 아니라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에 대한 인책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졸지에 사태의 한복판으로 끌려들어온 국정원의 표정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일단 여의도 李부총재 개인 사무실에 보관돼 있던 10여건의 국정원 문건을 회수하긴 했지만,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은 2일 문건반출 사건에 대한 입장표명을 해야할지, 한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지 등에 대해 깊숙한 내부토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럴 경우, 상황변화에 따라 계속 공식반응을 할 수밖에 없어 불필요한 정쟁(政爭)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입장표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 해도 모든 국가기관에 대한 보안검색권과 정보조정권을 갖고 있는 국정원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그것도 일반 직원이 아닌 최고 책임자에 의해 발생한 일이다.

이종찬 전 원장이 직접 발탁한 황재홍(黃在弘)공보관은 "전임원장이 퇴임하며 짐을 싸는 과정에서 가져간 것이라 어떤 내용의 문건인지 알 수 없다" 고 말했다.

李부총재가 반출한 국정원 문건 중 일부라도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해선 "李전원장에게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다" 고 밝혔다.

여권의 다른 핵심 관계자도 조심스럽긴 했지만 "국정원이 이종찬 전원장을 상대로 문건 외부유출 여부 등에 대해 직접 조사하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 고 귀띔했다.

국민회의 이영일 대변인도 이날 오전엔 "千원장의 승인을 받아 반출했다" 고 말했으나 오후엔 "승인이 아니라 양해" 라고 정정했다.

여권 전체의 분위기가 최소한 '李부총재에 대한 직접 조사' 쪽으로 옮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와 함께 지난달 26일 千원장이 李부총재를 직접 만난 사실이 여권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때 심한 언쟁도 있었다는 전언인데, 문건반출→기밀유출 가능성 등에 대한 다툼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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