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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호프집 불 55명 사망·79명 부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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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3분 만에 1백34명 사상(死傷)' . 인천시 중구 인현동 호프집 상가 화재사건은 처음 불이 났을 때부터 진화(鎭火)까지 시간으로만 따져볼 때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형 참사다.

소방관들이 불과 23분 만에 불길을 잡았으나 55명 사망, 79명 중경상이라는 큰 피해를 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이 상가 업주들의 불법 구조물시설과 배짱영업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부실한 소방점검 등 당국의 무관심, 작업인부들의 안전불감증 등이 겹친 인재(人災)였다.

◇ 화재 참사〓지난달 30일 오후 6시55분쯤 인천시 인현동27 4층 상가건물 지하 1층 '히트 노래방' 에서 내부수리 중이던 아르바이트생 김모(17).임모(14)군 등이 바닥에 깨진 손전등을 쓸어담다 발생한 불꽃이 신나통에 옮겨붙으면서 불이 났다.

불은 신나통과 페인트통을 폭발시키며 삽시간에 스티로폼으로 덮인 통로 외벽과 목조계단을 타고 2, 3층으로 번졌다.

사상자는 대부분 비상구도 없고 통유리창마저 나무 패널로 밀폐돼 있던 2층 '라이브Ⅱ 호프집' 에서 생겼다. 대부분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소방대원 진입 당시 출입구 앞쪽에 50여명이, 주방쪽에 30여명이, 내부에 설치된 20개 가량의 테이블 사이 통로에 50여명이 뒤엉켜 참혹하게 쓰러져 있었다.

사상자 중 1백9명은 인천시내 32개 중.고교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있었던 학교축제 후 호프집으로 뒤풀이를 왔다가 화를 당했다.

그러나 3층 당구장에 있던 손님 17명은 유리창문을 통해 밑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고, 1층 식당 손님도 바로 대피했다. 4층 가정집에는 당시 사람이 없어 변을 면했다.

호프집에서 구조된 인모(16.인천 D고 1)군은 " '불이야' 하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전기가 나가 실내는 암흑천지로 변했고, 곧이어 유독가스로 숨을 쉴 수가 없어 바닥에 엎드린 채 옷으로 코를 막았는데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고 증언했다.

숨진 학생들은 중앙길병원과 인하대병원 등 9개 병원에 안치됐으며 부상자들은 인천과 서울시내 17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구조적 문제점〓1층에서 지하 노래방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양쪽 벽면이 인화성이 강한 스치로폼으로 불법장식돼 유독가스와 불길이 순식간에 2층 호프집으로 올라가게 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굴뚝 역할을 한 것이다.

더욱이 호프집 대형 통유리 창문은 목재로 불법폐쇄돼 청소년들이 높이 2.7m에 불과한 도로로 뛰어내리지 못한 채 떼죽음을 당한 주원인이 됐다.

2층 호프집은 또 폭 1.2m의 비좁은 계단통로로 연결돼 있었다. 또 56평에 불과한 호프집 내부는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큼 테이블이 빼곡이 들어차 대피할 공간이 없었다. 바닥은 온통 카펫으로 깔려 인화물질 천지였다.

또한 최초 발화지점인 지하 노래방은 실내장식용 페인트 작업과정에서 발생한 휘발성 분진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전문 작업인부들은 모두 퇴근하고 10대 아르바이트생 2명이 신나통과 종이뭉치 등 인화물질을 옆에 두고 빗자루로 청소하다 일을 냈다.

경찰 수사 결과 특히 노래방 천장에 설치돼 있던 스프링클러(확산소화기) 15개를 인부들이 '작업에 방해된다' 며 모두 제거해버려 초기진화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층마다 설치된 화재경보용 비상벨도 작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관할 소방서는 지난 6월 8일 정기 소방점검을 실시한 뒤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정했다.

특히 이 호프집은 무허가여서 인천 중구청은 지난달 22일 업소폐쇄를 명령해 놓고도 사후점검을 하지 않고 방치했다. 업주는 청소년 주류판매로 지난달 9일 적발돼 과징금을 받고도 배짱영업을 계속했다.

◇ 수사 및 대책〓경찰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노래방 내부수리를 벌이다 불을 낸 馬모(24)씨 등 4명에 대해 31일 과실치사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잠적한 노래방 주인 정모(34)씨와 호프집 사장 이모(28)씨 등 2명을 쫓는 한편 공무원과의 유착도 캐고 있다.

정영진.구두훈. 이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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