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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직장이 싫어진 30대를 위한 추천서 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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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굳이 가을이 아니더라도 젊은이들은 고통을 앓는다. 특히 여전히 자유롭고 싶은 30대 직장인들. 당장 사표를 던지고 싶지만 티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볼라치면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자꾸 스쳐지나가고 있다. 평생의 한가운데 쯤에서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 이 자리에서 다시 새롭게 일어설 방도는 없는 것일까.

현재 자신이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위한 번민은 이렇게 계속 이어질 뿐이다. 어쩌면 이 시대 보편적 군상일지도 모를 이런 젊은이들에게 작가.시인.교수.직업 컨설턴트 등 5인이 3권씩의 책을 추천한다. 이 책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게 하는가 하면 결단의 에너지도 불러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 '신현림의 '희망의 누드' (열림원)

출세가도를 고속 질주하다 어느 지점에선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젊은 은행장의 사연이 이 가을을 적막하게 만들었다. 비상구 하나쯤 곁눈질할 여유조차 없었는지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파란만장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평탄한 삶은 재미가 없다.

혹자는 내가 굴곡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객기로 하는 말이 아닌가 의심할지 모른다. 실은 나의 삶에도 요철이 많았고 그때마다 훈련된 긴장감이 나를 젊은이의 영토에 오래 머물도록 도와 주었다.

'희망의 누드' 라는 책은 일단 그 제목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희망과 누드의 예기치 않은 결속은 우리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욕심도, 아집도, 앙금 같은 미련까지도 버릴 수 있을 때-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산다는 것은 게임이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이기기만 하는 게임이 재미 있는가. 마지막 순간의 승률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새로운 판짜기를 위해서라면 권태는 훌쩍 벗어던져라. 희망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누드도 아름답다.

주철환

그밖에…▶물 좀 주소 목마르요(한대수 지음.가서원):지난 시절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던 가수 한대수의 회고록. ▶승려와 철학자(장 프랑수아 르벨 외 지음.창작시대):철학자인 아버지와 과학도 출신으로 승려가 된 아들의 대화.

***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열림원)

어렸을 때 낚시광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고향인 전주 근처의 강이며 들녘을 많이 돌아 다녔다. 고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는 동안 고향에 갈 기회만 생기면 그 곳들을 찾아 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한군데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곳은 없었다. 나의 '아름다운 시절' 은 오로지 나의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살아 남아 나를 슬프게 한다.

비슷한 시절을,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란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가 진메 마을 고향이야기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논과 밭과 강과 호수와 감나무와 물고기와 풀꽃과 새들의 이야기는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

서울의 스모그가 뿌옇게 끼어 있는 나의 눈에 비치는 그의 땅과 하늘은 너무 맑고 깨끗하여 눈부시다. 나는 눈을 씻고 그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어느날 문득 이 살벌한 경쟁의 싸움터를 떠나 내 안의 참 모습을 만나보려 하는 이이게 그의 글은 강물의 속삭임처럼, 바람의 웃음소리처럼 나를 슬프게, 그리고 황홀하게 할 것이다.

김명곤 <연극인>

그밖에… ▶벼랑끝에서 하늘까지(MBC여성시대 편집.밀알출판사):경제위기로 내몰린 우리 이웃의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 ▶신화의 힘(조지프 캠벨.이윤기 옮김.고려원):신화와 현대세계, 내면으로의 여행, 영웅의 모험 등의 주제들이 사고의 폭을 넓힌다.

***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일거리.파트너.집.옷.음식 등등에서 새로운을 추구하려는 몸부림은 너무 당연한 인간의 모습일는지 모른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은 우리의 삶을 기계적인 습관의 켜가 두껍게 쌓인 일상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시켜 새롭게 옷 입히고 활력을 되찾는 기회를 갖게 한다.

세기말 물살 빠르게 조성되는 시장의 세계체제화라는 '메가 트랜드' 의 맥락에서 기업은 어떤 생존전략을 가져야 하며 개인은 어떻게 삶을 꾸려갈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정보와 지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기존의 건조하고 메마른 경영서와 판이하게 구별되는 부분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살아온 저자의 내면적인 이야기가 글 전체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의 문제와 함께 '나' '너' '가족' 에 얽힌 삶의 이야기가 묻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새 기회의 장에 발을 담그고 싶은 젊은이라면 이 책을 통해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성공으로 가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그밖에… ▶ '간디의 물레' (김종철 지음.녹색평론사): '작은 것이 아름답다' 는 인도식 삶에서 다시 시작하기. ▶ '무소유의 삶' (법정 지음.범우사): '버린는 게 곧 얻는 것' 이라는 불교적 지혜.

*** '사마천의 '사기(史記)' (까치)

사기는 중국 한 무제 시대에 태사령 사마천(司馬遷)이 찬술한 중국의 첫번째 기전체 통사다. 총 130편, 52만6천5백자의 분량으로 그 내용은 본기(本紀).표(表).서(書).세가(世家).열전(列傳)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마천은 흉노 토벌에 나섰던 이릉(李陵)이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포로가 되어 한 무제로부터 처벌을 받게 되자 이를 간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일종의 거세형)을 받았다.

이와 같은 역경을 딛고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지언(一家之言)을 이룩한다' 는 각오로 그의 나이 55세에 불후의 명작 '태사공서' 를 완성했다.

사기는 역사와 문학(문체), 궁극적으로 인간학의 모범이며 전기문학의 비조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부분적으로만 번역, 통용되다가 불과 5년 전에 일곱 권으로 간행되었다. 대사를 앞둔 남아라면 필독하시라.

성석제 <소설가>

그밖에… ▶카오스(제임스 클리크 지음.동문사):서구 과학계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던 카오스 이론을 재미 있고 명쾌하게 설명. ▶반쪼가리 자작(이탈로 칼비노 지음.민음사):머리와 마음의 열을 식혀주는 환상적이면서 우화적인 이탈리아 소설.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 (유혜자 옮김.열린책들)

약간은 컬트적인 이야기 구조, 서정적 문체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자연을 벗삼으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종일 걸어 다니는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쥐스킨트가 좀머 아저씨를 통해 바라보는 사람들, 예를 들면 가족과 미스풍겔이라는 피아노 선생 등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는 통찰력 또한 돋보인다.

거기다 어린 시절 환한 미소를 제공했던 카롤리나 퀵켈만이라는 여자 아이에 관한 연정의 상상력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처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신선한 관찰력은 세상의 여러가지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과 순수함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뒤돌아 볼 틈 없고 효율성만을 좇아가려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좀머 아저씨의 '목적 없는 자연 속 걷기' 는 새로운 인간애를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뭔가를 포기하려는 이에게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던져줄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한다.

김농주 <연세대 취업담당관>

그밖에… ▶시인의 사랑(신달자 지음.자유문학사):필자의 넓은 마음밭이 사고의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열린책들):인간의 심리적 접근을 통한 본질문제에 대해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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