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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硏 보고서] 신규채용 감소…기업인력 고령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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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자업체인 S사 총무팀은 과장 이상 간부가 대리급 이하 사원보다 더 많다. 97년까지만 해도 간부가 12명으로 사원보다 1명 적었으나 지난해 대리 4명이 과장으로 승진한 반면 신입사원은 한명도 안들어오는 바람에 간부가 16명으로 늘면서 간부대 사원 비율이 16대 9로 역전됐다.

이러다 보니 과장들이 복사를 하고 점심시간 당직을 서는 등 사원들이 하던 '허드렛일' 까지 하고 있다. 김모 과장은 "지난 2년동안 신입사원 충원이 없다 보니 간부와 사원의 구분이 거의 없어졌다" 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기업들이 97년께부터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인원을 최소화하면서 직장에서 인력의 고령화와 간부화가 심각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7일 '고용방식의 다양화와 한국기업의 선택'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 몇년간 신규채용이 대폭 줄면서 인력의 고령화와 이로 인한 조직구조의 역피라미드화가 심화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창의성과 도전의식이 저하되는 등 부작용 때문에 기존 인력에 대한 재배치나 신기술 습득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부가 발간한 '98 노동백서' 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의 30세 이상 취업자 비중은 94년 74%에서 98년 78%로 뛰었고 올해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신규채용 얼마나 줄었나〓취업전문기관인 리크루트에 따르면 30대 그룹은 96년 1만7천여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았으나 97년에는 거의 뽑지 않았으며 지난해에는 7천여명만 채용했다.

올해 역시 1만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리크루트 이종구 편집장은 "기업들이 최소인력만 채용하는 추세라 앞으로도 신입사원은 그리 많게 늘지는 않을 것" 이라 내다봤다.

◇ 고령화 현황〓중견 섬유회사인 D사는 96년부터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다. 이 바람에 96년 1월 총직원 중 과장급 이상 간부가 33%였으나 지금은 절반에 가까운 45%까지 올랐다.

이 회사 모 부서의 경우 12명 중 과장급 이상 간부가 11명, 사원이 1명으로 과장이 사실상 막내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 과장이 전화받는 일에서부터 주요 업무의 기안 및 결재까지 하는 '전천후 실무자' 가 될 수밖에 없다.

㈜두산 식품BG 관리팀 조모대리(32)는 91년 입사 이래 계속 '말단' 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후배가 없기 때문에 고참 대리인데도 불구하고 팀내 비품조달은 물론 회식장소를 정하는 궂은 일을 하고 있다. 이 회사 식품BG의 경우 과장 이상 간부가 69명인데 비해 사원은 14명에 불과하다.

㈜효성 경영전략1팀도 과장 이상이 12명인데 비해 대리 이하는 4명이다. 이 팀 이모 과장은 "손이 달리면 차장이 사원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고 말했다.

한솔제지 기획팀 임모 주임은 "입사 이후 4년동안 신입사원이 안들어와 식대.문구비 등 부서경비를 정리하는 기분이 묘하다" 고 말했다.

지난해와 올해 공채를 하지 않은 S사는 20여개 관리부서 5개 부서 이상이 과장이 복사를 해야 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여사원을 많이 줄이는 바람에 몇명 안되는 여사원을 모시듯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여사원 고령화 추세도 심한 편이다. 97년 이후 3년째 사원을 뽑지 않은 한 경제단체의 경우 2백30여명의 여사원 중에서 20대는 한명 뿐이다.

◇ 어떤 부작용이 있나〓삼성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즉 승진이나 호봉상승에 의해 기업이 지출하는 임금은 늘지만 능력이 따라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D섬유 인사 담당자는 "종전에는 과장이 부서의 모든 업무를 알고 있었으나 실무자로 전락하면서 자기 분야만 알다 보니 직위에 맞는 생산성을 낼 수가 없어 개인.회사 모두 손해를 보는 셈" 이라고 말했다.

또 최고 경영진은 젊어지는데 사원들은 고령화되는 점, 고령화된 인력이 기술이나 어학, 국제경영조류 습득에 뒤쳐지는 점을 문제로 꼽기도 한다.

◇ 대책은〓삼성연구소 이 연구원은 ▶기업이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인력운용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계속 신입사원을 채용하고▶이를 위해 고령화된 인력을 마구잡이식으로 내보낼 게 아니라 재취업프로그램 등을 지원해 신규인력 채용여력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체계적인 훈련으로 고령화된 인력에 대해 신기술이나 지식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구멍난 조직은 경력사원으로 채울 것을 덧붙였다.

김동섭.홍승일.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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