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배럴 원유 군침 국제 투기꾼들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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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대처 전총리의 아들 마크 대처(왼쪽).

아프리카 적도기니에서 일어날 뻔했던 쿠데타의 진상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추악한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 적도기니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시도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3월 7일이다. 짐바브웨 공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용병 60여명이 붙잡힌 사건이 발단이다. 체포 혐의는 불법 무기 구매. 구매 목적은 적도기니에서의 쿠데타였다.

사건은 최근 세계의 눈길을 다시 끌었다. 영국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 여사의 아들 마크 대처(51)가 지난 주말 남아공 경찰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 음모=서방의 용병과 국제 투기꾼들이 경상도보다 작은 소국에 군침을 흘린 것은 석유 때문이다. 적도기니엔 5억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음이 1995년 확인됐다. 15년째 장기집권 중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는 인권 유린과 독재로 서방의 미움을 사왔다. 이런 상황을 호재로 본 그렉 웨일스라는 영국의 사업가와 특수부대 출신 용병대장 사이먼 만이 의기투합했다. 적도기니의 망명 지도자인 세베르 모토와 함께 모의했다. 쿠데타를 일으켜 모토에게 정권을 주고, 대신 원유 관련 이권을 받기로 합의했다. 대처 전 총리의 아들도 대박을 장담하는 권유를 받고 27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 묵인=주모자 웨일스 등은 미국과 영국의 주요 정부 부처 및 정보 관계자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옵서버와 선데이타임스 등 영국 언론의 보도다. 이에 따르면 웨일스는 지난 2월 미국을 방문, 국무부.국방부.CIA 관계자들을 만나 적도기니의 정권 교체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영국의 MI6와 스페인 정부도 쿠데타 음모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

◆ 배신=짐바브웨에서 용병을 실은 비행기가 억류된 배경은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옵서버는 프랑스 정보기관이 방해공작을 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영국 주도로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우려한 공작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용병대장 만이 잡히면서 선발대로 적도기니에 들어가 있던 닉 뒤 트도 체포됐다. 짐바브웨에서 잡힌 만은 불법무기 구매 혐의로 기소됐다. 쿠데타 혐의는 빠졌다. 다른 용병 66명은 무죄 방면됐다. 그러나 적도기니에서 잡힌 닉 뒤 트는 쿠데타 주모자로 사형 위기에 몰렸다. 그가 입을 열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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