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전세 뒤엎은 '박정태의 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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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 20일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롯데의 극적인 역전승은 박정태(롯데)의 '코끼리' (해태 김응용 감독)식 군기잡기로 만들어졌다.

박이 보여준 리더십은 김응용 감독이 자주 쓰는 '분위기 잡기' 를 연상시켰고 이게 롯데선수들의 '악'과 '깡'을 살려냈다.

물병이 난무하던 6회초.

호세의 퇴장이 발표되는 순간, 박정태가 가방을 챙겼다. "가자. 짐싸라" -'성난 탱크' 는 저돌적으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오른쪽 외야 출입구로 향했다. 박정태의 기질을 잘 아는 롯데선수들은 주장의 행동을 따랐다.

롯데 김명성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이 모두 나서 박정태를 막았다. 이때 김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 경기를 안하면 한국 프로야구는 끝이다" 였다.

박정태는 정말 끝을 보고 싶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원정구장에서 관중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오히려 호세가 퇴장당했다는 '불공평' 에 대한 항의 표시였지 야구를 끝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23분의 난동 끝에 경기가 재개되면서 박정태는 선수들을 더그아웃 앞으로 모았다.

"무조건 이겨라" - . 짧은 한마디였다.

이 한마디가 악에 받친 롯데선수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마해영이 곧바로 동점 홈런을 쏘아올린 것은 능력의 1백20%가 발휘된 한방이었다.

이 한방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마는 호세보다 더 요란한 제스처로 더그아웃의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순간, 롯데선수들은 모두가 달라졌다.

경기 후반 한몫을 한 공필성(9회초 선제안타). 임수혁(9회초 동점홈런). 임재철(11회초 선제안타). 김민재(11회초 결승타)는 모두 화려한 스타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죽을 각오'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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