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교언무실(巧言無實·말은 교묘하게 꾸며대지만 실제 하는 일은 없음)’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며 “겸손한 자세로 일을 잘해 나가겠다는 각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경환 지식경제부·이귀남 법무부 장관, 정운찬 국무총리, 이 대통령, 김황식 감사원장, 김태영 국방부·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왼쪽부터). [연합뉴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 경영자의 장기적 안목으로 세종시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정권에서 정한 대로 세종시로 9부2처2청을 모두 옮기면 정치적 논란은 피할 수 있겠지만,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길을 갈 수는 없다는 근원적 고민이 ‘세종시 전면 수정론’에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되더라도 2012년 말에야 정부부처 이전이 시작돼 사실 현 정부와 무관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이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며 “총리실 등 정부가 충청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구체적인 방안을 만든 뒤 이 대통령이 충청민심과 정치권에 대한 전면적인 설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내부적으로 정면돌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세종시법(행정중심복합도시법) 개정을 통해 세종시의 성격을 바꾸고, 이전 부처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 상태다. <본지 10월 17일자 1, 3면>본지>
그렇지만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정운찬 총리가 중심이 돼 만들 세종시의 새 청사진이 나오기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그전에 대통령이 나서면 곧바로 정치이슈로 변질돼 문제 해결에 도움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이 대통령의 생각들은 여기저기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17일 장·차관 워크숍 발언이 대표적이다. 비록 세종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지만, 장기적인 국책사업에 대한 그의 정면돌파식 접근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이 대통령을 만난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대통령의 양심상 세종시는 원안 그대로 하기 어렵다”는 이 대통령의 말을 들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종시 원안 추진이 국가 발전을 바라보는 이 대통령의 양심이나 신념에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자칫 유령도시가 될 수 있는 원안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게 이 대통령의 신념”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충청민심을 설득할 수 있는 매력적인 ‘명품도시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를 가장 큰 과제로 보고 있다.
충청 출신인 정운찬 총리가 11월 중 대안을 만들어내면 이후 이 대통령이 충청과 정치권 설득에 나서겠지만 반발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청와대도 예상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러나 “충청도민을 설득할 수 있는 명품도시안이라면 원안 추진에 무게를 싣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등 어떤 정치인도 설득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