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어쩌려고 왕이 될 세손을 질투했던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창경궁 동무
배유안 지음, 생각과느낌
197쪽, 9000원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동화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이후 눈병 때문에 충북 청원군 초정 약수터로 요양을 갔다’는 사실 하나를 모티브 삼아 『초정리 편지』를 펴냈던 작가 배유안이 썼다. 이번엔 ‘정조 모함에 앞장섰던 정후겸은 화완옹주(사도세자의 동생)의 양자’라는 사실에서 상상력의 가지를 쳤다.

정후겸은 역사가 기억하는 악인이다.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본래 어려서부터 기괴하고 망측한 독물(毒物)’이었고, 대사헌 이계가 정조에게 올린 글에서는 ‘요망스럽고 반역적인 심보를 가진, 타고난 몹쓸 종자’로 기록된 자였다. 그런 그가 이 동화의 주인공이다.

몰락한 양반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당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정후겸이 화완옹주의 양자가 되기까지, 그 과정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화완옹주의 남편인 부마가 먼 친척뻘이어서 그 집에 맡겨졌다. 그런데 젊은 부마가 갑자기 죽는다. 자식도 없는 상태였다. 의지할 것 없는 옹주에게 명민한 후겸은 큰 위로가 됐고, 양자로 삼기에 이른다. 행운은 계속됐다. 남편 잃은 딸을 가엾게 여긴 임금 영조가 화완옹주를 대궐 안에 들어와 살게 한 것이다. 후겸도 함께 대궐로 들어갔고, 그 곳에서 세손 정조를 만난다.

비슷한 또래인 세손과 후겸은 금세 친구가 된다. 나무막대기로 칼싸움을 하기도 했고, 물수제비 내기를 하기도 했다. 장차 왕이 될 세손과 친구가 됐으니, 후겸의 행운은 계속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후겸은 그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다. 비교와 질투라는 몹쓸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저 같은 그늘도, 외로움도 없어 뵈는 세손. 세자의 다정한 눈길을 받으며 걷는 세손을 보면 자신의 아버지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다. 아버지와 다정하게 지내보지 못한 서러움도 뒤섞였다. 자신이 가진 것도 이미 많은데, 후겸은 늘 저보다 높은 곳에 있는 세손을 바라보고 비참해했다. 공연히 세손에 빗대 스스로를 학대한 셈이다. 질투를 이겨내지 못한 후겸은 결국 자신을 시기와 야심으로 채웠고, 세손의 즉위를 방해하고자 온갖 음해와 모략을 저지르고 만다.

작가는 정후겸의 내면을 세심하게 파고들어, 그의 삶을 망쳐버린 열등감과 질투심을 끄집어냈다. 그 어리석은 실체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건 독자의 몫이다.

역사동화인 만큼 역사적인 지식을 자연스레 익혀가는 잇점도 크다. 붕당 정치와 사도세자의 죽음 등 당시의 역사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