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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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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관광은 영어의 sightsee를 단순 번역한 말이 아니다. sight(구경거리)와 see(보다)가 관광의 글자 뜻과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관광이란 말은 중국의 고전 '주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觀의 뜻을 '나라의 번영된 모습(光)을 보다'라고 풀이하는 구절이 그것이다.

테러 위험이 높아지긴 했지만 관광은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큰 투자나 첨단기술 없이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어 개도국에 특히 매력 있는 산업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해외관광 수요도 늘어난다. 이때 여행수지는 적자를 내는 게 보통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선진국답지 않게 거국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관광입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광객 유치를 독려하고 있다. 2003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535만명이다. 세계적으론 30위 정도다. 일본은 이를 2010년까지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런 노력 가운데 주목받는 것이 생활공간의 관광 자원화다. 서민들의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도쿄(東京)의 경우 수십년 묵은 목조가옥이 밀집해 있는 야나카(谷中)가 좋은 사례다. 고도성장기 이전의 서민들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기후(岐阜)현의 산골 도시 다카야마(高山)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문화재나 유적지가 없는 데다 교통도 불편하다. 그런데도 이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거리풍경과 그 속에 녹아든 일본인들의 일상을 보기 위해 연간 5만여명의 외국인이 찾아온다. 후쿠시마(福島)현의 오우치(大內), 나라(奈良)현의 이마이(今井) 등도 지역주민의 전통민가를 훌륭한 견학코스로 만들었다. 모두 명승고적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래서 '광(光)'으로 폼을 잡기보다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있다. 관광이 아닌 '관상(觀常)'이라고나 할까.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로 나간 우리 국민 중 관광객의 비중이 51%에 달했다. 역대 최고치다. 불황이라지만 해외관광 수요는 꾸준하다는 얘기다. 국내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방증도 된다. 그러는 동안 일본은 '비싼 물가를 감수하더라도 가볼 만하다'는 평을 듣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