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화폭력'이 넘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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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보화시대에서 전화란 대화와 정보의 소통을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생활수단이다. 이 전화가 최근 들어 폭력의 중요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전화부대' 의 등장과 '전화폭력' 이 바로 그것이다. 벌써 꽤 오래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전화부대의 등장은 이 사회의 토론문화를 질식시키면서 개인을 위협과 협박의 공포 속으로 몰아가는 집단괴롭히기의 또다른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흉기로 둔갑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 것일까. 우리 사회 일각에 도사린 비겁함과 패거리 이익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전화란 본인이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익명성(匿名性)이 보장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폭언과 협박을 가하는 비겁한 숨은 목소리가 가능하다.

나는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나를 속속들이 알고 일방적 폭언을 가할 때 받는 개인의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도 개인 단위의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성과 집단성을 띤다는 것이 전화부대의 속성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과 관련된 소송사건에서 판결을 맡았던 한 부장판사 집의 협박전화다. 매일 밤 신분을 밝히지 않은 전화를 해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어딘지를 안다고 말하고는 끊는다는 것이다. 집으로 꽃바구니를 보내고는 '축 사망' 이라는 카드를 끼워넣기도 한다.

익명을 담보로 신체적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노골적 협박이다.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한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보복심리와 함께 유사한 판결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자는 목적도 있어 보이는 폭력이다.

비슷한 전화폭력은 도처에 넘치고 있다. 중앙일보가 현정권의 언론탄압 사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자 이를 비난하는 전화부대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신문제작마저 어려울 사태로까지 몰고 갔다.

이쪽의 말을 들을 겨를도 없이 자신들의 말만 내뱉고 욕설을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자기편에 불리한 논설이나 기사가 나갔다고 해서 이를 매도하고 욕설하는 사례는 언론사마다 겪는 일상사가 되고 있다.

전화폭력으로 뭔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도 이만 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괴롭히고 보복하려는 일종의 병리적 현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이런 병리적 현상에 대해서는 심각한 경각심을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전화폭력은 명백한 형사법상 협박에 속한다. 경찰은 엉뚱한 곳에 감청을 할 것이 아니다. 피해당사자가 신고를 하면 바로 이런 곳에 감청을 해 비겁한 집단의 폭력을 뿌리뽑아야 유사한 전화폭력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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