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로 수기 독점연재] 16. 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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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6. 물거품이 된 첫사랑

동거녀를 일본경찰에게 빼앗겼다는 억울함 보다는 난생 처음 느껴본 이성과의 사랑이 물거품이 된데 대한 괴로움이 더 컸다.

출소 후 40일 만에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일찍 발견돼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마음의 깊은 상처는 쉬 사그러들지 않았다.

일본경찰을 상대로 한 '김의 전쟁' 은 '민족차별' 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그때의 원한이 분명 배경에 깔려 있었다.

내가 수기를 통해 그녀와 관계된 사람들의 실명을 굳이 감추려는 것은 이제는 미움을 거둬들여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그녀가 지금도 일본경찰과 살고있다면 과거를 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게 진정한 나의 바람이다.

그러나 20대의 나는 일본경찰이라면 무조건 반항부터 하고보는 '한마리 늑대' 였다. 잘못을 저지르고 경찰서에 붙잡혀 있을 때에도 "네 놈들이 나를 잡아넣을 자격이 있어. 사람을 형무소에 처넣고 결혼까지 약속한 여자를 빼앗은 놈들이…" 라며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경찰은 주위 사람들 눈이 두려웠던지 "히로짱(희로), 참게. 그들은 벌써 부부가 돼 살고있지 않나" 며 나를 달랬다.

그 덕에 나는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고 경찰서에 끌려가서도 늘 특별대우를 받았다.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유치장에 갇힌 상태에서도 수시로 들락거리며 밖에서 스시(초밥)를 먹고 들어오기도 하고 경찰이 운동할 때 풀어놓은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경찰들은 전과는 많았지만 잡범에 불과한 내가 큰 일을 벌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방심하는 사이 내가 유치장 안에서 권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아주 사소한 일로 잡혀있을 때라 금방 보석으로 풀려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않자 동거녀를 빼앗은 일본경찰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모치즈키(望月)란 경관이 당직을 서던 날, 나는 그가 책상 서랍에 넣어둔 권총을 슬쩍했다. 총이 없어진 것을 안 모치즈키는 사색이 돼 내게로 달려와 "히로짱, 권총이 없어졌어. 자네가 가져갔지" 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권총을 꺼내들고 "남의 여자도 태연하게 빼앗아 제 마누라로 삼는 녀석들이 권총 한자루 없어졌다고 호들갑이야" 라며 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서장을 비롯한 경찰들이 놀라 우르르 달려왔다. "히로짱, 무슨 일이야. 말로 하지. " 나는 그들을 향해 왜 보석이 안되는지 따져 물었다. 그러자 서장이 "히로짱, 미안하네. 부하가 터무니없는 짓을 했네. 야마모토(山本)검사와 잘 통하니 보석을 부탁해 보겠네" 라고 달랬다.

나는 보석을 판사가 결정하는 지, 검사가 결정하는 지 조차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짜고짜 "당장 보석금을 마련해올테니 어머니에게로 가자" 고 졸랐다. 대여섯 명의 경찰을 데리고 보석금을 구하러 집으로 간 것은 새벽 1시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의 사정은 아랑곳 않고 자신만 생각하던 철부지에 불과했던 것 같다.

잠자다 놀라 일어난 어머니는 "지금은 돈이 없으니 내일까지 꼭 구해다 주겠다" 며 함께 온 경찰들에게 술상을 차려줬다.

새벽녘에 경찰서로 돌아와 약속대로 권총을 돌려주는 순간 경찰들이 떼로 달려들어 나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던 당시의 내겐 그때의 일이 일본경찰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게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내가 고이즈미(小泉)란 일본경찰의 '민족차별' 발언에 더욱 발끈하게 된 간접적인 원인이란 점에서 '김의 전쟁' 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국에 돌아와 '애국지사'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민족차별'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동기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경찰에 대한 과거의 개인적인 원한도 상당부분 개입돼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일로 2년 여의 세월을 니가타(新潟)형무소에서 보내고 52년 4월에 석방된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즈오카(靜岡)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스기우라(杉浦)란 친구 때문에 나는 청년기에서 가장 긴 8년형을 받게 된다. 스기우라는 내가 마쓰모토(松松)소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 약혼녀가 일본경찰과 붙어산다는 사실을 전해준 사람이었다.

교도소 동기인 셈인 그와 나는 자연스레 같이 행동하게 되었다. 당시 내겐 군용 권총이 한자루 있었는데 유흥비가 떨어지자 스기우라가 권총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무 생각없이 권총을 빌려주자 갑자기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더니 뒤에 타고 강도 행각을 벌였다.

얼떨결에 나도 택시강도 공범이 된 것이었다. 스기우라와 나는 법정에서 서로 자기가 주범이라고 주장하며 '도둑의 의리' 를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건으로 나는 8년형을 선고받고 치바(千葉)형무소의 차가운 감방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여기까지가 '김의 전쟁' 을 벌이기 전 내 모습이다. 고생하는 어머니 속도 모른 채 방탕한 세월을 보낸 나의 젊은 시절은 정말 무의미한 것이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시절이 후회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어머니,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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